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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전 11시경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의 랜드마크라는 메타폴리스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시민들은 초고층 건물을 휘감은 시커먼 연기를 보면서 가슴을 졸여야 했다. 결국 3층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난 화재로 인해 4명이 죽고 47명이 부상을 입는 비극적 참사가 일어났다. 신도시의 화려한 랜드마크 건물은 지진과 화재 등으로부터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는 안전한 건물이 아니라, 작은 사고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안전에 취약한 후진국형 건물이었음이 드러났다.

지금까지 경찰 조사를 보면 철구조물 산소절단 작업 중 발생한 화재가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화재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프링클러 및 액화소화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더 큰 화마를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의 본질은 화재에 의한 재해라기보다는 유독성 검은 연기, 즉 ‘일산화탄소’에 의한 질식이라는 2차 재해이다. 화재가 아니라 연기에 의한 질식사였다면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됐다 하더라도 피해를 얼마나 막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각종 건축재들이 유독성 연기를 내뿜는 가연성 물질로 돼 있으므로 불과 몇 초만 들이마셔도 숨을 쉴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리모델링 공사장 천장 등 칸막이 재료가 우레탄 및 샌드위치 패널로 돼 있다면 그 공간 자체가 화재 시 거대한 ‘생화학 실험실’ 같은 환경으로 바뀌게 된다. 불꽃은 보이지 않고 건물 내에 시커먼 유독성 연기만 내뿜기에 아무리 물을 뿌려대도 진압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사고의 경우 시설관리업체 간부가 화재 시 유독성 연기를 밖으로 배출하고 맑은 공기를 내부로 주입하는 기능을 하는 환기시스템을 오작동을 우려해 꺼놓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0년 해운대 초고층 화재, 2014년 서울 송파구 초고층 화재 역시 화재 그 자체보다는 화재로 인한 유독가스로 인해 피해자 규모가 커졌다. 40명이 사망한 2008년 1월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 참사, 28명의 사상자를 낸 2012년 8월 종로 국립현대미술관 공사 화재 참사,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2014년 5월 고양시 버스터미널 화재는 모두 피해자들이 유독성 연기에 질식돼 사망하거나 다쳤다. 건설업체들이 이처럼 화재가 발생할 경우 위험한 살인도구가 되는 위험한 건축재를 선호하는 이유는 값싸고 시공이 쉽고 단열효과는 좋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호한 법규정이 이러한 참사를 부추기고 있다. 고용노동부 등은 대형 참사가 발생한 이후 사후약방문식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사고는 이어지고 있다. 이에 더해 최저가 다단계 하도급 공사 관행과 건설사들의 안전의식 부재로 인해 작업 시 화재감시자 배치, 불꽃방지망 설치, 소화기 배치 등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50억원 미만 공사를 포함한 소규모 현장에서 안전관리를 책임지는 전담자를 배치하도록 시급히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고층 건물은 불이 위층으로 쉽게 번지는 속성상 ‘내화충전재’를 설치하지 않으면 더 큰 참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최근 도심 곳곳에 초고층 건축물(전국 2500개동)을 앞다퉈 짓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123층짜리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에서도 안전성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20층 이상 화재진압용 사다리도 거의 없으므로 초고층 건축물들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진다.

이번 사고에서 보듯이 대형 건물의 화재사고는 현장작업자뿐 아니라 시민들의 안전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이에 대한 근본적 대책들이 요구된다.

이번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이승현 전국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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