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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구로에는 ‘벌집촌’이 널려 있었다. 벌집은 간이주택이다. 방 한 칸과 부엌 한 칸으로 된 3~4평짜리. 누군가는 ‘라면상자’만 하다고 했다. 방문에는 1·2·3·4호 등 호수가 적혀 있었으며 볕이 들지 않아 항상 눅눅했다. 화장실이 없어 아침마다 공중화장실은 북새통을 이뤘다. 구로공단의 어린 여공들이 이곳에 살았다.

1970년대 정부의 수출주도정책으로 서울 구로구 일대에 산업단지가 세워졌다. 봉제, 가발, 완구 등 노동집약적 업체들이 들어섰다. 하루 14시간에서 16시간, 한 달에 28일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먼지만 날릴 정도의 월급만 손에 쥐었다. 1985년 조합원들은 노동권보장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은 처참한 탄압으로 끝났다. 어린 산업역군들은 경제성장의 소모품이 됐다.

주말을 앞둔 지난 3일 밤 서울 구로동의 넷마블 사옥. 창문 블라인드 틈 사이로 불빛이 새나오고 있다. 김영민 기자

1990년대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경공업 중심의 기업들이 구로공단을 떠났다. 정부는 이곳을 정보기술 산업단지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공장이 있던 자리에는 대규모의 아파트형공장과 빌딩이 들어섰다. 애초 강남 테헤란 밸리에 자리를 잡았던 벤처 업체들이 치솟는 임대료를 피해 하나둘 이사왔고, 이곳은 어느새 정보기술업체의 새 요람이 됐다.

구로디지털단지에 ‘구로의 등대’라는 별명을 가진 게임회사 넷마블이 있다. 다들 야근하느라 밤늦게까지 빌딩의 불이 안 꺼져 ‘등대’로 불린다. 보통 주 6일 근무에 평일엔 꼬박 야근을 한다. 주 7일 근무도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한다. 살인적인 근무 여건으로 직원이 숨지는 등 사달이 났다. 회사 측은 8일 “야근, 주말근무제를 금지하고 탄력근무제를 도입하는 등 노동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디지털단지에서는 졸음을 쫓기 위해 ‘붕붕 드링크’를 마시면서 야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복지는 변변치 않다. 넷마블의 발표로 게임업체들의 노동환경이 개선될지에는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기색이다. “한참 바쁘게 돌 때면 새벽 4시 퇴근이 예사였다. 저녁 8시 퇴근은 꿈도 못 꾸었다. 휴일도 한 달에 첫째 셋째 일요일뿐이었다… 일당은 하루 130원에서 140원이었다.”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한 노동자는 이렇게 회고했다. 30년이 더 지났다. 노동환경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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