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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국은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5100t에 달하는 쓰레기를 불법 수출했다. ‘합성 플라스틱 조각’으로 신고된 화물이었지만 각종 유해물질과 쓰레기가 섞여 있었다. 그린피스 필리핀과 한국 사무소의 대응으로 쓰레기는 한국으로 반송됐다. 

그러나 플라스틱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여전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사용되고 있고, 그 폐기물은 몇몇 동남아시아 국가로 보내지고 있다.

 올해 3월에 유엔 회원국들은 케냐에 모여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자는 역사적인 결의안을 채택했다. 플라스틱의 전체 수명주기를 다룰 법적 구속력을 갖는 협정을 2024년까지 만들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첫 번째 정부 간 협상위원회가 28일부터 우루과이에서 열렸다.

그린피스 필리핀사무소에서 캠페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나는 플라스틱 협약을 위한 첫 협상을 바라보며 희망과 불안이 교차한다. 조약이 성공적으로 체결되면, 우리는 넘쳐나는 플라스틱의 생산과 소비를 멈추고 ‘플라스틱 시대’가 끝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도 거대 자본의 이익과 충돌할 때 그 본질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은 불안 요소다. 기업은 국제 협약이 체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백만달러를 쏟아붓는다. 막대한 양의 플라스틱을 생산·판매하는 코카콜라와 펩시 같은 글로벌 브랜드는 오염 해결 목표만 제시할 뿐,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많은 국가에 플라스틱 규제가 존재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필리핀과 같은 저개발 국가들은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폐기물 거래·소각으로 인한 사회적, 환경적 비용을 떠안는다. 이들 국가의 국민에게 남는 것은 건강과 기후에 해를 끼치는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뿐이다.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글로벌 차원의 협약을 반드시 체결해야 한다. 기업의 플라스틱 생산량을 줄이고 일회용 플라스틱을 퇴출하는 것은 지구 기온 상승폭을 1.5도 이하로 제한하는 탄소중립 목표에도 부합한다. 플라스틱의 99%는 화석연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국제플라스틱협약은 플라스틱 생산의 주체인 기업에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 또 필요한 만큼 다회용기에 담아가는 리필스테이션 및 재사용 시스템을 보편화하는 내용도 빠져서는 안 된다. 플라스틱 문제로 피해를 입는 이해관계자의 의견도 반영해야 한다. 모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재사용 혁명은 이미 전 세계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협약의 탄생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대기업, 석유 자본, 그리고 그들의 눈치를 보는 정치인의 목소리에 묻혀서는 안 된다. 협약은 시민의 이익과 환경 정의, 기후 위기 해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국제플라스틱협약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환경 협약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 협약이 실패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

<마리안 레데스마 그린피스 필리핀사무소 제로 웨이스트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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