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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늙어가는 공영방송론자다. 넷플릭스, 유튜브, 아마존 프라임의 시대가 열렸지만, 나는 아직도 시민들에게 무료로 고품질 방송을 제공해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서 고품질 방송이란 공정한 뉴스, 역사 드라마, 코미디, 국가대표 스포츠 중계, 재난 정보를 포함한다. 이런 내가 공영방송 사업자에 실망하는 이유는 내용이 공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기술적 혁신에 실패해서 디지털 역무를 제공하는 지상파 플랫폼을 만들어 내지 못해서 그렇다. 

나는 멸종하는 자유주의 신문론자이기도 하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온갖 수준의 정보와 오락물이 넘치는 가운데 신문이 이용자의 선택을 받아서 수익을 내지 못하면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믿는다. 여기서 자유란 국가의 간섭과 기업과 시민사회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해서 자율적으로 편집권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이런 내가 신문 사업자에 질리는 이유는 내용이 자유롭지 않아서가 아니다. 기술적 혁신에 실패해서 디지털 이용자의 선택을 통해 수익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문 사업에 대해 운을 떼면 ‘얼씨구’ 맞춰오는 고저장단율이 있다. 포털 때문에 그렇다는 비난이다. 내 말도 그 말이다. 포털 사업자들이 이용자 경험을 자료로 전환해서 분석하고, 이용자 선택을 극대화하는 인공지능 모형을 개발하고, 이용자의 자발적인 정보제공을 활용해서 서비스를 확장하는 동안에 도대체 신문 사업자들은 뭘 했느냐는 것이다.

‘신문 대 포털’이란 그릇된 대립구도를 상정하고 상대방과 정치권에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자신의 무력함을 속였던 세월이 벌써 20년이다. 이젠 신문을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흩어진 채, 어떤 형식의 전략적 고민과 투자마저 버겁다 식의 비관론이 퍼지고 있다. 한때 신문과 플랫폼 사업자 간의 관계를 놓고 벌였던 논전마저 그리울 지경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신문 사업에 대한 고민의 시작점으로 삼을 만한 자료 하나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지금 유튜브를 열어서 검색창에 ‘프로덕트 애널리틱스에서 인과추론의 활용 사례’라고 쳐보자. 검색결과로 최보경 자료분석 전문가가 준비한 한 시간짜리 강의가 하나 뜰 거다. 제발 랜선에서 귀인을 만났다는 자세로 고쳐 앉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 강의를 들어보자. 내용이 어렵더라도 일단 48분께 등장하는 ‘실무에서 겪었던 어려운 점들’에 대한 도입부까지라도 견디고 보기를 바란다.

당신이 최보경 분석가의 강의를 전부 이해할 필요는 없다. 내생성이니, 도구변수니, 스필오버 효과니, 평균처치 효과니 하는 용어들을 이해하려면 결국 몇 학기에 걸쳐 수업과 실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점은 당신이 몸담은 신문사에 그 강의가 제시하는 문제의식에 공감할 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또는 그런 자료기반 결정으로 편집권을 보완해야 한다고 믿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는지 생각해 보는 데 있다. 최소한 이 강의를 함께 듣고 싶은 동지가 있는지 고민해 보는 데 있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이래로 신문도 이제는 자료기반 성과평가와 기획이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자는 별로 없고,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식별할 수 있는 자는 더욱 드물다. 최근 언론계에는 구독모형을 도입해서 지불장벽을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그런 정책적 선택마저 이용자료 분석을 경유해서 도입해야 한다는 사실마저 모르는 이들도 있다.

최근 언론을 개혁하자는 압박도 세지고 있다. 개혁의 가늠좌는 뉴스 내용, 편집, 사업 모형 등 모든 분야를 겨냥하고 있으며, 내부 혁신의 과제와 맞닿는 사안들도 있다. 그런데 나는 개혁이건 혁신이건 그 방향과 방법에 대해 어떤 합의도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언론이 제공하는 뉴스와 역무를 이용하는 시민의 행동과 태도를 모른 채 무엇을 어떻게 개혁하고 혁신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연재 | 미디어 세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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