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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에서 촉발된 촛불혁명의 힘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이 지금은 역설적으로 불공정에 발목이 잡혀 있는 형국이다. 불공정의 크기와 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입은 상처는 만만치 않다. 조국 전 법무장관 사태가 정점인 줄 알았더니 뒤이어 추미애 법무장관도 자녀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검찰개혁 추진을 저지하려는 세력의 기도된 의혹 제기로 보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집요하게 파헤치는 야당과 언론의 흔들기로 그들의 도덕성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거대 여당에 맞설 무기와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야당은 호재를 만난 듯 인사청문회와 그 이후 몇 달째, 국회 대정부질문 내내 열을 올리고 멈춰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언론도 하루 1000개가 넘는 기사를 쏟아내며 정쟁의 불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드러내고 있다. 결과적으론 특권과 반칙, 기득권층의 부와 명예의 대물림을 끊어내겠다던 개혁세력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인식 심기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다를 것으로 기대했던 진보세력에 대한 상실감이 더 분노하게 만든 것이다. 다급한 상황 속에서 대통령은 출범 당시의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대국민 약속을 소환하며 불공정에 대한 분노를 다독이려 제1회 청년의날 기념식에서 37번이나 공정을 외치기도 했다.
다른 불공정 이슈에 대해 언론이나 정치권이 이만큼 관심을 두고 집요했던가. 의혹 관련 기사가 지면과 포털을 채우고 인사청문회부터 지금까지 장기간 무차별 폭로와 무조건 옹호를 반복하면서, 비생산적인 정쟁을 지속했던 적이 있는가. 이 또한 비례성도 잃고 불공정한 방식이다. 기승전 추미애 장관이다. 누구나 공감하고 반감을 불러일으킬 소재인 입시와 군대의 불공정을 들춰냈다. 흙수저 대 금수저의 이분법을 동원해 공분을 자극했다. 입시와 군대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경험했거나 맞닥뜨려야 할 관심사이므로 자신의 처지에서 자기 것과 비교해 본다. 그리고 주관적 경험과 입장에 따라 공정한지, 불공정한지 판단한다. 여기에 바로 함정이 숨어 있다. 극한의 경쟁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불이익이라고 느껴지면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공정성을 재단한다. 상대방의 작은 불공정도 엄청나게 커 보이게 마련인데, 작은 불공정으로 우리 사회의 공정함을 판단하는 잣대로 삼기도 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판결에서 보인 남성들의 거부반응이 그 예다. 정의를 표방하지만, 절차적 공정성을 무시한 디지털교도소도 마찬가지다. 공정성 개념과 기준은 다양한데 입시와 군대 관련 불공정으로 사회 전체의 공정성을 재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절대적 평등을 공정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개인의 도덕성 문제를 우리 사회 전체의 불공정 문제로 치환해버려 공정성의 의미는 모호해진다.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는 의도는 여러 가지다. 사회구조적 불공정 사례를 들춰내 이슈화하고 이를 바꿔보려는 노력이 주를 이룬다. 불공정을 바로잡아 공정과 정의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신념에 찬 행동들이다. 반면에 정작 공정하지 않고 정의롭지 못한 부류가 정의와 공정의 화신인 양 분칠하고 방패막이용으로 공정을 입에 올리기도 한다. 지금 야당이 후자의 모습인 것처럼 보인다. 불공정과 부정의의 총합인 국정농단 사태에 책임이 없지 않은 그들이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고 있다. 겉으로는 혁신을 외치지만 단절을 택하기보다는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정당이다. 그들이 공정을 말할 자격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입맛에 맞는 것만 문제 삼는 편식적 공정을 탓하는 것이다. 작은 불공정에 눈감으라는 얘기도 더더욱 아니다. 그 이상으로 구조적 불공정 시정에 집요함과 치열함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다.
공정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 기획이 아니라 정쟁에만 활용할 생각에 그치니 불공정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화두가 되었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을 타파하려면 바로 자신의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불공정에도 분노해야 한다. 전관예우와 법조비리, 대기업의 불법 경영승계, 하도급·가맹점·유통 분야 불공정 거래 관행, 노동자의 소득 불공정성과 이익 배분의 불공정성 등등 실현해야 할 공정과 타파해야 할 불공정이 산적해 있다. 선거에서의 승자독식제도는 공정한가. 국회의원의 이해충돌과 사적 이해관계도 불공정 사례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 이것이야말로 공정함의 척도인데, 우리는 잘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분열과 갈등만 조장하는 개별적이고 작은 불공정 들춰내기가 아니라 분노 게이지를 구조적 불공정에 맞춰야만 공정사회로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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