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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균 체육부 기자

 

10여년 전 삼성그룹에 입사했을 때다. 그룹에서는 삼성 관련 서적 여러 권을 신입사원들에게 나눠줬다. 그중에는 ‘삼성 용어사전’이라는 책도 있었다.

가장 강조했던 용어는 이건희 회장이 특별히 신경 쓴다는 ‘뒷다리 잡기’라는 단어였다.

누군가의 혁신적 행동에 대해 쓸데없이 트집을 잡아서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뒷다리 잡기’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계명’에 가까웠다. 삼성이 신경영 선언을 통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뒷다리를 잡지 않는’,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영 문화 덕분인지도 모른다.

조지프 슘페터는 ‘기업가 정신’을 주장한 대표적 학자였다. 슘페터가 기업가 정신에서 말한 기업가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 미래에 도전하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혁신가’다. ‘뒷다리 잡기’ 금지와 ‘기업가 정신’이 맞닿는 대목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9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10구단 창단을 사실상 무산시켰다. 롯데 장병수 사장이 줄곧 주장한 ‘시기상조론’이 받아들여졌다. 선수 수급의 문제점과 프로야구의 질적 가치 하락 우려가 이유로 제기됐다.

 

류대환 홍보지원부장, 10구단 창단은 유보입니다. l 출처:경향DB

고교야구팀 수는 53개지만 1학년 신입부원의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리틀 야구의 규모는 팽창일로다. 동아대 전용배 교수는 “NC의 창단으로 경남지역 학교 야구부의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창단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만으로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삼성이 그토록 경계했던 ‘뒷다리 잡기’를 닮았다. 삼성과 한화는 지난 이사회까지 10구단 창단에 반대 뜻을 롯데와 함께했다. 이날 임시 이사회를 앞두고 반대 구단들의 설득에 몇몇 구단이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KBO가 과감하게 10구단 창단 승인 여부를 표결에 부치지 못한 것은 ‘달라진 기류’ 때문이었다.

프로야구를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관중수가 급증했고, 지자체 2곳이 기업을 선정한 채 프로야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구단 대표들은 변화를 거부했다.

재벌들은 한국 경제를 이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기업가 정신이 실종’된 채 ‘뒷다리를 잡는’ 재벌 계열사 사장들의 선택은 한국 경제의 암울한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징후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원래 재벌들은 ‘독점 구조’를 무엇보다 좋아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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