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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김용균씨가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지난 4일 또 발전소 운전업무를 하는 하청노동자가 작업 중 장치에 끼여 전치 6주의 중상을 입었다.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김용균씨 사망 이후 생긴 2인 1조 근무수칙이 사람을 살렸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과 부상자 ㄱ씨(48)가 소속된 하청업체 한전산업개발이 사고 처리 과정에서 보인 행태를 보면 이곳이 불과 석달 전 온 나라를 슬픔에 빠뜨렸던 사고가 난 곳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ㄱ씨는 2호기 내에서 작업하던 중 석탄분배기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보행로가 아닌 곳으로 피하려다 기계에 몸이 끼이는 사고를 당했고, 동료가 장치를 멈추는 풀코드를 당겨 구조하며 살 수 있었다. 김용균씨 사망 이후 서부발전이 안전시설을 대폭 보강했지만 사고 지점에는 출입금지 울타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원청인 서부발전은 책임을 피하는 데만 급급했다. 서부발전은 사고 다음날인 5일 “재해자가 보행공간이 아닌 곳으로 피하면서 사고가 났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2월 9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영결식에서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하지만 안전시설은 현장 작업자가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할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도 산업재해 발생위험 장소에서 작업할 때는 안전·보건 조치를 해야 한다고 돼 있다. 서부발전은 기자들에게 공개한 보도자료에 ㄱ씨의 동의 없이 실명을 기재하기까지 했다.

ㄱ씨가 소속된 한전산업개발의 대처도 허술했다. 한전산업개발은 사고 직후 ㄱ씨가 외관상 크게 다친 곳이 없어 보인다며 병원으로 이송하지도 않은 채 사고보고서를 썼다. 사고 1시간40분 만에야 ㄱ씨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매뉴얼에 따라 구급대원의 안전조치를 받도록 하지 않고 직원 승용차로 이송했다. 태안화력 3호기에서는 2017년 11월 40대 하청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큰 부상을 입었는데도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개인차량으로 이송했다가 결국 사망에 이른 일이 있었다. 반복된 사고에서 누구도,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셈이다.

이번 사고 수습과정을 지켜본 한 정부 관계자는 “큰 사건을 겪은 지 얼마나 됐다고 다들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남지원 | 산업부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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