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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역 정치부 기자
지난해 6월1일 북한 국방위원회로부터 메가톤급 폭로가 날아들었다. 5월 중국 베이징에서 남측이 비밀접촉을 하면서 ‘돈가방’을 건넸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부실하고 미숙한 대북 관리를 상징하는 단면으로 남북 관계사에 길이 남을 오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동부 장관에 이어 청와대 2인자였던 이명박 정부의 공신인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선을 넘었다. 19일 한 종편방송에서 200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가진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의 비밀회담 내용을 공개해버렸다. 노동부 장관 시절 김양건을 여러 차례 만나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양해각서(초안)에 서명했고, 북측이 국군 포로와 납북자 일부를 송환하는 대가로 남측이 경제지원을 약속했다는 게 요지다.
그런 그의 입을 두고 뒷말이 많다. ‘임태희-김양건 회동을 비롯해 현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두 차례나 합의했다가 무산됐다’는 것은 지난해 10월 이미 알려졌다. 당시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도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만난 박주선 민주통합당 의원에게 밝힌 것이다(2011년 10월26일자 경향신문 6면 보도).
임태희 기자회견 l 출처:경향DB
통일부 박수진 부대변인은 보도가 나온 뒤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는 비밀접촉 사실을 확인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비밀접촉 당사자로 지목된 김천식 통일부 차관도 관련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싱가포르 비밀 접촉의 후속 협의차 1개월 뒤 개성 자남산 여관에서 김 차관이 남북 당국자 간 공식 비공개 회담에 참석했다는 것 또한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그는 단 한번도 시인하지 않았다.
이번처럼 정권이 끝나기도 전에 당사자가 직접 비밀접촉을 떠벌리는 것은 유례가 없다. 대북 교섭자로서 결코 해서는 안되는 처신이다. ‘나는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노력했는데 남들 때문에 못했다’고 변명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낮은 대선 후보 지지율을 만회해보려고 선거용 불쏘시개로 망가뜨린 남북관계마저 이용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 입이 무겁다는 그 자신에 대한 평판까지 허물어뜨렸다.
임 전 실장은 어제 페이스북에 “지금도 ‘한 발짝만 더 갔었으면…’ 한다”는 해명성 글을 띄워놓았다. 깃털처럼 가벼운 언행을 보면서 남북관계조차 당장 입맛에 맞지 않으면 뱉어 버리는 이른바 ‘실용정부’의 맨 얼굴을 보는 듯하다.
이런 현 정권의 공과를 모두 짊어지고 역사의 심판을 받을 날이 몇 개월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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