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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 변호사
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인 문재인씨가 본격적으로 비전과 정책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그가 제시한 비전은 4대 성장전략이란 것이다. 분배와 복지를 강화하는 ‘포용적 성장’, 문화혁신과 교육혁신을 통한 ‘창조적 성장’, 화석연료 시대를 마감하고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생태적 성장’, 집단협업, 개방형 혁신, 협동생태계를 활용하는 ‘협력적 성장’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솔직히 실망스럽다. 세계적으로 성장주의에 대한 회의가 퍼져가고, 더 이상 경제성장에 집착하는 것이 사회구성원들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상식이 되고 있는데 문재인씨는 여전히 ‘성장’에 초점을 맞춰 얘기를 시작했다.
대선 출마 선언하는 문재인 ㅣ 출처:경향DB
성장주의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경제성장률을 국가정책의 목표로 삼겠다는 사고가 바로 성장주의이다. 이 성장주의에 빠지면 사회구성원들의 행복이나 지속가능한 미래같은 것은 1차적인 국가정책의 목표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 문재인씨의 출마기사를 보면서 성장주의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환경도 지키고 복지도 강화하면서 성장을 하겠다는 것이지만 ‘성장’에 집착을 하기 시작하면 환경도 복지도 뒤로 밀리기 쉽다. 소위 민주정부 10년의 경험이 그것을 보여준다. 문재인씨는 한·미 FTA와 관련해서는 좀더 노골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우리나라는 통상개방국가의 길로 나아가야 하고, 한·미 FTA를 추진한 것도 옳은 방향이었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재협상을 통해 독소조항을 줄여나간다는 단서를 붙였지만 “어쨌든 한·미 FTA는 타결됐기 때문에 잘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미 FTA 추진에 대한 과감한 자기반성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이다. 물론 새로운 내용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녹색당이나 진보정당에서 주장해 온 생활임금 보장이나 신재생에너지 확대 같은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성장’의 들러리라는 느낌이 강하다. 문재인씨가 ‘성장’을 자신의 비전으로 제시한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 ‘녹색 성장’을 외쳐온 이 정권을 비판하며 차별화하겠다는 야권후보가 내세운 첫마디가 ‘성장’인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가 말하는 ‘생태적 성장’이 ‘녹색 성장’과 무엇이 다른지를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문재인씨의 이런 한계는 얼마 전 일본에서 했다는 발언과도 연결되어 있다. 문재인씨는 일본을 방문해서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노후 핵발전소를 폐쇄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핵발전소 수출은 별개’라는 얘기도 했다. 핵발전소 수출까지 반대한다고 하면, 경제성장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반론을 의식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원전수출 1호라는 아랍에미리트 원전수출은 덤핑수출을 해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엄청난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런 식의 원전수출로 인해 그 나라 시민들이 처하게 될 위험과 10만년 이상을 보관해야 하는 핵폐기물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에게 위험한 것이라면, 다른 나라 시민들에게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우라늄 고갈 문제, 날로 올라가는 원자력 발전단가 등을 고려할 때 원전수출을 포기하지 않는 발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문재인씨는 여전히 성장주의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사실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 관계’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지겹게 들었던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은 헛된 것에 불과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결국 경제성장률에 대한 집착이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토건사업을 계속했고, 관료들에게 끌려 다녔으며, 재벌들의 눈치를 보았다. 결과적으로 사회 전 분야에서 양극화는 심해졌고, 부동산 값을 잡는 데도 실패했다. 핵발전소는 계속 늘어났고, 수명이 끝난 고리1호기 원전은 수명연장이 되어 지금까지 가동 중에 있다.
만약 문재인씨가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자신이 몸담았던 정부를 성찰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출마선언에는 그런 성찰이 부족하다. ‘경제성장률에 대한 집착’처럼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했다. 그것은 그 자신에게나 변화를 바라는 많은 시민들에게나 불행한 일이다. 지금이라도 문재인씨는 더 돌아보고 더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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