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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시청 앞 서울광장에선 제17회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1년에 단 하루 열리는 성소수자들의 축제다. 광장에는 수십개 부스가 늘어서서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도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렸고, “나는 퀴어입니다”를 당당하게 외치는 무대 행사와 카퍼레이드도 진행됐다. 주최 측은 5만명이 참가했다고 추산했다. 역대 최대 인원이다.
한양대 성소수자 동아리 부스를 찾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더 이상은 빈칸으로 남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를 완성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중앙 무대에서 축하 공연이 한창이던 오후 3시쯤, 늦은 점심을 먹으러 인근 패스트푸드점을 찾았다. 개신교인들이 ‘동성애 반대’ 집회를 열었던 대한문 근처였다. 가게 한쪽에서는 퀴어 축제에 참가한 한 젊은 여성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앞이 파인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목 아래쪽에 보랏빛 스탬프로 찍은 ‘레즈비언’이라는 메시지가 훤히 드러났다.
계산대 앞, ‘동성애 반대’ 문구가 적힌 파란 종이모자를 쓴 또 다른 여성이 있었다. 그는 혼자 중얼거리며 레즈비언 스탬프를 찍은 여성을 한참 동안이나 뚫어지게 노려봤다. 스탬프를 찍은 여성은 이를 의식했는지 눈을 내리깔고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위층으로 올라갔더니 옆자리 남성 둘이 같은 곳을 쳐다보며 쑥덕대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레즈비언 스탬프’ 여성과 그의 파트너에 닿아 있었다. “더럽고 못생긴 애들”이란 말이 귀에 들어왔다. 이 남성들 역시 반대 집회에서 나눠준 팸플릿을 들고 있었다.
혐오와 증오는 축제 현장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이날 서울광장은 가림벽으로 둘러쳐졌다. 혐오세력과의 충돌을 막기 위한 경찰의 조치였다. 가림벽 안쪽에선 축제 참가자들이 평화롭게 놀고 있었지만, 출입구를 지키는 경찰을 지나 한 발자국만 밖으로 나와도 “동성애자는 지옥에 간다”는 확성기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어떻게든 광장 안으로 뚫고 들어가려는 개신교인과 이를 막으려는 경찰 간의 몸싸움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허락된’ 축제 공간을 벗어나면 성소수자에게 삶의 공간을 내어주지 않으려는 우리 사회가 강고히 자리 잡고 있다. 그나마 1년에 한 번뿐인 축제도 ‘폐쇄된’ 광장에서 열어야 한다면, 그 축제가 정말 ‘축제’일 수 있을까. 단지 레즈비언 스탬프를 찍었을 뿐인 한 여성을 향한 증오와 혐오의 시선을 직접 마주하니 성소수자가 일상적으로 겪는 탄압과 공격이 단박에 이해됐다. 광장 밖에 모여 시끄럽게 방송하는 혐오세력을 보며 “저들이 길에 나올 이유가 우리보다 절실한 것 같지 않다”던 한 게이 남성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김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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