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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KBO리그가 지난 5일 개막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증가하던 때를 떠올려보면 개막은 감격스러운 일이다. 보건 공무원과 의료진이 흘린 땀방울,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제한했던 시민들의 수고가 개막이라는 결실을 이뤘다.
전 세계 스포츠가 멈춘 상황에서 KBO리그 개막은 지구촌의 화제이기도 했다. 개막은 한국이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거의 승리하고 있다는 표상이었다. 중동의 알자지라를 포함한 많은 외신들이 개막전 현장을 취재했다. 더 나아가 미국 스포츠채널 ESPN은 KBO리그 TV 중계권을 구입해 미국 내 중계방송을 시작했다. KBO리그가 졸지에 미국 무대에 오르게 됐다.
그동안 KBO리그는 즐거웠다. 팬들은 멋진 플레이에 환호했고 패배를 분하게 여겼으며 실책성 플레이엔 유머 코드를 씌워 희화화하면서 ‘예능’으로 즐겼다. 그런데 KBO리그가 ESPN을 통해 미국에 중계되면서 리그 수준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어느 때보다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현직 프로야구 감독이 리그 수준이 낮다고 한탄하는가 하면, ‘미국이 보는 앞에서 수준 낮은 경기를 해선 안 된다’는 기사가 나온다. 선수들의 실책 없이 경기가 끝나면 ‘미국 보기에 부끄러운 야구 없었다’는 안도의 목소리가 더해진다. 선수 혼자 부끄러워하면 됐을 한심한 플레이를, 지금은 현장 스태프와 미디어가 집단적으로 반성하고 있다. 영화계에선 일찍이 봉준호 감독이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을 “로컬(지역)” 행사라고 부르는 ‘쿨’함을 자랑했건만, 한국 야구계는 약소국 감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야구 종주국인 미국 메이저리그의 수준이 KBO리그보다 몇 수 위라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안달복달해봤자 KBO리그가 하루아침에 메이저리그 수준으로 올라서지는 못한다. KBO리그가 미국의 인정을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유도 국가대표 선수들이 종주국 일본에 인정받기 위해 훈련하는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1905년 조선을 배경으로 한 영화 <YMCA 야구단>에서 이호창(송강호)은 타격을 한 후 1루를 향해 뛰지 않고 걸어간다. 양반은 뛰어선 안 된다고 가르친 아버지가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저서 <혼자서 본 영화>에서 이 장면을 서술하면서 “외세와 강자의 시선을 내면화한 나머지 (중략) 스스로 감시하며 강제하고 있다”고 썼다. KBO리그가 미국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건 타격을 하고 1루로 걸어가는 일과 다르지 않다. 야구를 잘하면 좋지만 못한다고 해서 단체로 창피할 일도 아니다.
한국 여론의 기우와 달리 미국 언론은 KBO리그의 매력을 찾는 데 열심이다. 뉴욕타임스는 “KBO는 아직 도루와 번트를 한다. 순수함이 있다. 메이저리그처럼 타구 발사각이나 투구 회전율에 매몰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KBO는 보석 같은 리그”라는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의 발언을 전했다.
아쉬운 쪽은 미국 언론이다. 메이저리그 개막이 연기돼 콘텐츠가 없는 상황에 KBO리그가 단비가 됐다. KBO가 ‘갑’이다. 선수들은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플레이를 하는 것으로 족하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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