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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충격적인 스토리 전개로 소문난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보다가 진짜로 충격에 빠졌다. 욕망과 치정의 남자 주인공. 그를 협박하러 누군가 찾아온다. 아내가 조심스럽게 추궁한다. 누구냐고, 왜 집에까지 찾아왔냐고. 남자가 군색한 변명을 한다. 신문 보라고 찾아왔다고,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요즘 세상에 누가 신문을 본다고…”.
하아, 그렇구나. 요즘 세상에, 누가, 신문을 본다고? 방금 물음표를 달았지만 느낌표를 달아도 무방하다. 오래전부터 느껴오던 일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신문 읽으라고, 사설도 읽고 칼럼도 읽고, 그래야 세상 보는 눈이 운운하면서 신문 읽기를 권면하였으나, 그 또래 아이들처럼 좀처럼 읽지 않았는데, 아뿔싸, 그런대로 별 탈 없이 성장하고야 말았다.
종이신문 종사자들의 푸념과 달리, 젊은 세대가 세상만사 무관심한 것은 결코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그것도 수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과 접촉하고 있다. 심지어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응까지 한다. 단지 종이신문을 읽지 않을 뿐.
코로나19 이후, 각 일간지의 스포츠 기사들을 보면 이를 실감하게 된다.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모든 경기가 중단된 상태에서 기자들이 쓸 수 있는 기사는 없는 듯했다. 어느 신문은 백지에 가까울 정도로, 과감한 편집을 구사하여, 이 지구상에서 모든 경기가 중단되었음을 ‘보도’하기도 했다.
그나마 스포츠전문 방송에서는, 손흥민 하이라이트를 초단위로 외울 정도로, ‘역대급’ 명경기를 재방·삼방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신문이다. 경기가 없으니 기사를 쓰기 어려웠다. 독자적인 기획과 차별적인 기사는 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실 이는 코로나19에 의하여 뼈저리게 확인된 것일 뿐, 그 이전부터 내장되어 있던 문제가 아닐까. 비중 있는 경기와 스타 선수를 취재하는 오랜 관성이 인터넷 시대,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되면서 서서히 위기에 이른 것이다. 경기 당일에 생중계는 물론 주목할 만한 분석과 온갖 ‘뒷담화’ 인터넷 방송까지 다 끝났는데, 다음 날 신문은 뒤늦게 경기 상보와 인터뷰 한두 개를 보여줄 수밖에 없으니, 스포츠 자체가 갖는 역동성, 긴박성, 시급성이 다 휘발된 다음이다.
그러는 와중에 코로나19가 엄습하였고, 그로부터 두 달 가까이, 거의 모든 신문 매체는 공백을 메꾸는 데 안간힘을 써야 했다. 경향신문을 비롯하여 몇몇 신문들은, 장기간 경기가 없어도 스포츠 기사는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렇기는 해도 ‘위기는 곧 기회’라는 것을 입증한 기사는 드물었는데, 이는 결코 코로나19 때문은 아니다. 코로나19는 기존 매체의 잠복된 위기를 전면화했을 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스포츠는 ‘오직 경기 그 자체일 뿐’이라는 오랜 관습이다. 우리의 스포츠는 경기장 밖의 세상과 겨우 점선으로만 연결되어 있다. 선수도, 감독도, 단체도 그리고 물론 언론도 스포츠를 ‘경기장’ 안에서만 들여다본다. 게다가 스포츠의 가치를 ‘극기, 승리, 협동, 리더십’ 등 19세기 영미권에서 형성된 제국 엘리트 양성의 프레임으로만 보니 경기장 바깥의 세상사 변화는 관심도 없게 된다.
그러나 벌써 21세기도 중엽을 향하고 있다. 두 세기 전, 제국이 엘리트를 양성하던 시대는 물론이고 반세기 전 개발도상국이 국위선양을 하던 시대도 저물어갔다. 21세기 중엽의 수많은 인류사적 가치와 사회적 의제들이 스포츠를 감싸고 있다. 도시 공동체 형성과 개인 자존감 증진, 수많은 사회관계들의 연대와 우애, 전 지구적 평화와 인권, 스포츠에 내재된 미래지향적 가치의 발현 등은 스포츠로 하여금 과감히 경기장 밖으로 나오기를 원하고 있다. 이는 단지 가치의 실현만이 아니라 스포츠와 사회의 다중적인 교류, 그에 따른 문화콘텐츠 발현 및 스포츠 산업의 확장으로 연결된다.
우리 사회처럼, 사회안전망이 부실하고 사회관계망이 점점 해체되는 상황에서 스포츠가 갖는 역할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더욱 그러하다. 스포츠와 세상의 관계는 더욱 긴박하게 연결될 것이고 그에 따라 스포츠 기반의 새로운 직업까지 창출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스포츠 기사는 경기장 밖의 온 세상과 직선으로 연결될 필요가 있다. 더 많은 기사들이 가능하거니와 더 아름다운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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