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초대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취임 후 첫 사업으로 재난현장에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20여 종에 달하는 신고전화를 통합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4성 장군 출신답게 ‘강단 있게’ 연내에 통합한다는 내부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국민안전처는 지난 10일 ‘긴급신고전화 통합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연구용역 결과를 공개하고 여론 수렴에 들어갔다. 대표적인 신고전화인 112(범죄), 119(화재·구조·구급), 122(해양), 117(학교폭력), 118(사이버테러)을 비롯해 상담전화까지 더하면 20여개나 된다. 심지어 공무원조차 구분이 어려운 여러 가지의 신고·상담 전화는 반드시 통합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112와 119를 완전 통합한다’는 내부방침. 두 번호를 통합할 경우 “119의 선호도가 높다”는 조사결과까지 내놨다.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편의, 위기상황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단일번호로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로 공청회를 열었지만, 실제는 ‘119로 강제 통합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두 번호를 어느 한 쪽으로 통합하는 것에 대해 소방과 경찰 공무원은 “재난현장을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행정관료들이 하는 일은 늘 이런식이다”고 입을 모았다. 반발이 아닌 ‘한심하다’는 반응이다.

‘119와 112를 한 쪽으로 통합하자’는 정부안을 초등학생에게 물어본다면 쉽게 ‘왜?’라는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전화번호 안내(114)는 잘 몰라도 두 번호는 ‘대한민국의 대표브랜드’다. 화재신고를 112에 하거나, 범죄신고를 119에 하는 시민이 과연 몇명이나 있을지 궁금하다. 교집합의 숫자가 많다면 통합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지금은 행정 관료들이 안드로이드 폰과 아이폰을 강제로 통합하려는 모양새다.

김창영 _ 전국사회부 차장(국민안전처 출입)


현재는 119가 ‘통화중’이면 112로 신고할 수 있다. 그 반대도 같다. 설사 119에 범죄신고를 했다고 해서 접수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신고 내용이 링크되기 때문에 공유된다. 하지만 한 쪽으로 통합한 번호가 ‘통화중’이라면 어떻게 될까. ‘골든타임’을 되레 까먹게 되는 것이다. 국민안전처는 “기술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하지만 지금해야 할 일은 정작 다른 곳에 있다. 두 번호에 대한 홍보를 더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119가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위력을 발휘한다. 112도 마찬가지다. 장난 전화 방지대책도 수립하고, 119 상황실 인원도 더 늘려야 할 때다.

국민안전처가 논란을 만들 것이 아니라, 기관 간의 통신용어를 통합하고 메뉴얼을 정비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과 119상황실은 ‘사오정 대화’를 하다가 ‘골든타임’을 까먹었다. 119상황실이 “중앙에서 사람이 내려간다”고 하자, 해경 상황실은 “중앙에서 내려오는 고위직인사(VIP)의 의전을 할 여력이 없다”며 두 기관이 실랑이를 벌였다. 한 국회의원은 기자회견까지 자청, “구조할 시간에 의전을 논의해 골든타임을 까먹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119상황실이 말한 ‘중앙’은 ‘중앙119구조대’의 약어인 소방 통신용어라는 것이 경향신문의 단독보도로 밝혀져 국회의원은 물론 해경과 소방이 망신을 당했다.

화재와 중국의 불법어선 출현으로 현장은 ‘24시간 대기’를 하고 있는 비상상황에서 전문가들 조차 실소를 금치 못하는 ‘112와 119’의 강제통합을 두고 예산과 정력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행정관료들은 재난안전 전문가인 소방과 해경이 실전에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에 충실히 임해야 한다. 지금 행태는 ‘선무당이 사람잡고, 군대 안간 사람이 군무원이 돼서 군인행세’를 하는 격이다.

박인용 장관은 청문회 때 “제복을 입고 근무를 하겠다”고 했다. 우선 계급이 없는 정무직 장관이 어떤 제복을 입을 지 궁금하다. ‘재난 컨트롤타워 지휘관’이 소방관과 해경에게 경례를 받으려면 ‘신병교육’부터 제대로 받아야 한다. 재난대응 최하부 조직인 119안전센터에서 소방관과 똑같이 교대근무를 하면서 목장갑을 끼고 묵묵히 일하는 소방공무원의 열악한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 공기통을 메고 소방호스를 잡거나, 화재현장에서 유독가스가 어떤 맛인지 경험해 봐야 한다. 소방관이 숨진 아이를 안고 나오면서 ‘내가 1분 이라도 빨리 왔다면’이라고 자책하고, 화재진압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며 술이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하는 그들의 아픔부터 보듬어야 한다.

군함이 아닌 해경의 배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알기 위해 경비선부터 타봐야 한다. 한국의 해양주권 침탈에 맞서 목숨을 걸고 중국어선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전쟁터의 갑판에 나가야 한다. 해군 제독 출신이니 바다 적응은 빠를 것이다.

‘해체하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해경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못하는 그들에게 당당하게 해경이라는 말을 쓸 수 있도록 지휘권을 발동, 상처입은 병사부터 달래야 한다. 소방청·해양경찰청 해체. 그리고 출범한 국민안전처에 합류한 두 병사의 사기부터 올리는 것이 ‘대한민국 초대 재난지휘관’이 해야 할 일이다. 업무보고를 받거나 기관을 순시할 때가 아니다. 112와 119을 통합에 더 속도를 낸다면 그는 ‘국민불안처 장관’이 된다. 훌륭한 ‘재난지휘관’으로 소양을 갖출 수 있는 ‘골든타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김창영 기자 bodang@kyunghyang.com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