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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딸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논란에 또 고개를 숙였다. 조 회장은 어제 “딸자식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용서를 바란다”고 했다. 지난 9일 사고 직후 귀국길에 “고객들에게 불편을 끼쳐 사과드린다”고 한 데 이은 두 번째 사과다. 그는 “조현아는 검찰과 당국의 조사결과에 관계 없이 대한항공 부사장직과 모든 계열사 등기이사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 회장이자 조현아의 아비로서 사과한다”고 했다. 말 그대로다. 파문의 1차 책임은 조 전 부사장에게 있지만 사태를 이렇게 키운 건 총수인 그의 책임이 더 크다. 조 전 부사장도 어제 당국의 소환에 응하면서 “당사자에게 직접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일이 사과 한마디로 끝날 일은 아니다. 검찰 수사도 예고돼 있다. 재벌 오너라도 250여명의 승객 안전이 걸린 항공기를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항공기 운항을 방해한 것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다. 법 위에 군림하는 총수 일가의 전횡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검찰이 본때를 보여야 한다.

'땅콩 회항'사건의 당사자인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12일 서울 국토교통부 항공사고 조사위원회로 진술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출처 : 경향DB)


더 한심한 것은 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대한항공의 몰상식이다. 사고 후 대한항공은 “기내서비스를 담당하는 조 전 부사장의 정당한 권한 행사”라고 했다. 자기 맘에 안 든다고 승무원·사무장을 무릎 꿇리고 행패를 부린 게 당연하다는 말인가. 입단속하느라 승무원들의 카톡을 검열하고 짜맞추기를 강요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진솔한 반성과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변명과 거짓말로 화를 키운 것은 다름 아닌 회사 수뇌부다. 오너만 바라볼 뿐 회사의 주인인 주주·임직원과 서비스 이용자인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야말로 안하무인이다. 이게 한국 10대 재벌에 속한다는 대한항공의 현주소다.

총수 일가의 일탈 행위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직원을 종 부리듯 하는 것은 다반사고 ‘맷값 폭행’ ‘보복 폭행’ 등으로 오너 일가가 구속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대기업은 거짓 해명과 변명으로 국민적 공분만 키웠다. 재벌에 대한 국민 불신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다. 회사야 망가지든 말든 오너만 챙기면 된다는 그릇된 대기업의 인식과 황제경영이 낳은 폐해다. 이번 파문 와중에 대한항공 수뇌부 중 책임지겠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국적기라는 회사 간판이 부끄럽다. 사과했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 조 회장이 행동으로 보다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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