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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영 국제부 기자


 

사람은 가까운 친구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가치관과 지향점이 닮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사회에 이 말을 적용해보자면, ‘그 사회는 유명인사를 보면 알 수 있다’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탈리아 하면 적잖은 이들이 떠올리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그 예일 것이다. 자수성가형 언론재벌 출신인 그는 마피아 연루설, 부패와 탈세혐의, 형사소추, ‘붕가붕가 파티’와 미성년자 성관계 같은 각종 추문에도 꿋꿋하게 2차 대전 이래 최장 집권총리라는 끈질긴 정치 생명력을 보였다. 1994년 정계 진출 이래 100번쯤인 검찰 기소와 2008년 세 번째 총리 임기 중 50번 넘는 의회의 불신임 속에 살아남았으니 ‘정계 서바이벌’과 ‘사법 서바이벌’ 교본 시리즈라도 써야 할 분이다. 물론 지난해 유로존 경제난 탓에 총리직에서 쫓겨났고, 지난주에는 드디어 탈세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으면서 운이 기운 듯하지만 그의 정치 영향력은 아직 ‘몽니’를 부릴 만큼은 된다. 상고심에서도 유죄판결이 나오면 취약한 연정을 뒤엎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밀라노 도심에서 활짝 웃으며 지지자와 악수하고 있다. (경향신문DB)


 미스터리한 그의 권력과 인기에 대해 어느 외신 특파원은 베를루스코니가 곧 이탈리아인들의 욕망을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베를루스코니처럼 부자가 되고 싶고, 법망을 피하고 싶고, 여자를 좋아하는 등 이탈리아인들의 마음속에는 ‘작은 베를루스코니’가 있다는 얘기다. 남을 미워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기는 더 어려운 법인데, 어떻게 자기 자신에게 엄격할 수 있겠는가.


성숙단계 이전의 민주제도에서 공약이 아닌 이미지에 선거가 끌려다닐 때, 이처럼 대중이 정치인에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유권자로서 자신의 정책검증 능력을 발휘해 면밀히 따져보기보다는 ‘훌륭한 지도자’처럼 보이는 정치인이 가진 것처럼 보이는 ‘위대함’에 압도되는 것이다. 융 심리학에서는 이 같은 행동이 게으름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스스로 노력하기보다는 ‘주인의 영광을 주워담으며 광적인 찬양을 보낸다’고도 분석한다. 속된 말로 ‘빠의 정치’는 이 같은 맥락에서 발생한다. 눈 먼 열광의 정치는 사회구성원들의 자아가 약한 사회에서 등장하는 셈이다. 이 경우 구성원들은 자기반성을 못하는 것만큼이나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리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베를루스코니 같은 정치인이 20년 가까이 처벌받지 않고 정계 거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개인이 아닌 사실상 이탈리아 모두의 책임이 된다. 특히 선거를 통해 걸러낼 수 있는 선출직 공무원임에도 그러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그 사회가 ‘공범’이 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유권자들의 눈이 두려워서라도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를 꿈꾼다면서 형편없는 지도자에게 기회를 줘놓고는 그럴 줄 몰랐다고 변명하긴 어려운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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