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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점석 | 비교문학자
야합! ‘들판(野)에서 합궁(合宮)한다’는 말이다. 듣는 사람에 따라 이 말이 주는 여운은 다를 수 있다. 혈기방장한 젊음의 뒤안길을 벗어난 장년은 야릇한 미소를 지을 것이며, 검은 머리에 서리가 내려앉도록 요조숙녀를 꿈꾸며 살아온 여인은 ‘이런 망측할 데가 있나’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칠 것이다.
하지만 사마천의 <사기>에 실린 이 말의 어원적 용례는 의외다.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은 예순 살에 세 번째 부인 안징재와 결혼하여 공자를 얻게 되었다(紇與顔氏女野合而生孔子). 이때 그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야생의 질서가 아닌 규범적 인륜을 강조한 공자가 ‘야합의 산물’이라니 역설적이다. 물론 공자 출생의 야합이란, 아들을 얻기 위한 일념에 불같은 정염이 끓어올라 ‘들판에서 정을 통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기>의 해설서에 따르면, ‘여자는 49세(7×7)에 음도(陰道)가, 남자는 64세(8×8)에 양도(陽道)가 끊긴다’고 했다. 양도와 음도가 생기기 전이나 소멸된 후에도 임신이 되는, 아주 특별한 경우의 통정을 야합이라고 한단다. 공자의 출생이 야합이랄 수 있는, 매우 드문 경우인 것은 사실이다.
바야흐로 야합과 반역이 난무하는 정치의 계절이다. 정치판의 모리배들이 교언과 허언을 일삼으며 치마끈을 풀어헤치고 날뛴다. ‘지구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당적을 13번 바꾸며 마침내 본집에 돌아왔다’는 이인제는 정권교체를 위한 야당의 후보 단일화를 ‘야합’이란다. 야합의 결과로 새 시대의 토대를 쌓고 질서를 부여할 공자와 같은 인물의 탄생을 예견하다니! 혜안이 아닐 수 없다.
박수치는 새누리당 (경향신문DB)
야합을 일삼는 모리배의 전형을 김무성의 현란한 처세술과 무지한 독설에서 본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 사이에서 권력의 추를 따라 나댔던 것은 그들의 생존법이니 웃어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가계의 친일행적’(매일신보 1941년 12월9일자에 실린 부친 김용주의 조선임전보국단 대구지부 결성식 기사 참조)을 광적인 ‘레드 콤플렉스’로 상쇄시키려는 책동은 비열하기 짝이 없다. 사실을 날조하여 적의를 확산시켜 상식과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사회를 광기의 도가니에 빠뜨려 구성원들이 흑백논리에 갇히게 한다. 내부 분란을 야기하여 자신의 치부를 가리려는 게 그들의 술수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친일부역 오명의 굴레에서 자신들의 선친을 구하는 수법을 안다. 대중매체를 장악하여, 쉴 새 없이 ‘종북주의, 좌파 빨갱이, 북방한계선(NLL)’을 들먹이며 막무가내로 떠들어야 한다. 합리적 비판이나 논쟁이 시류를 주도하면 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니까. 완장을 찬 김무성과 동업자들은 안다. 5년 전 10월에도 그들의 당대표 강재섭과 한나라당의 모사꾼들이 근거 없이 ‘북방한계선에 관한 대화록’을 들먹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어떻게 물고 늘어졌던가를! ‘한반도와 부속도서들을 영토’로 규정하는 헌법에 비추어 봐도 북방한계선은 우리의 국경선이 아니다.
1992년 노태우 정권의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북방한계선에 대한 재논의를 언급했다. 기존의 합의를 토대로 2007년 노무현 정권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서해에서 우발적인 충돌을 방지하려는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설정하자고 합의했다. ‘10·4 선언’에 따라 그해 11월27일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대동강변의 송전각에서 열렸다. 참여정부는 북측이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해상경계선 재설정’ 주장을 철회하게 했다. 북방한계선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뚝심과 일관성이 거둔 성과였다.
폭로를 가장한 무책임한 언동으로 정치혐오증을 유발하는 정치 모리배들을 청소하는 것이 정치판의 쇄신이다.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정치 쇄신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권력을 좇아 단맛만을 빨며 야합으로 놀아났던 값싼 입들’이 더 이상 국민을 이간질할 수 없도록 도태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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