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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조그만 진드기 때문에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불완전한 존재다.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며 넘어설 수 없는 벽과 같다. 문명은 인간을 위협하는 위험과 맞서 싸워왔지만 정작 현재 인류가 골머리를 앓는 최대 위험 중 하나는 스스로 만들어낸, 핵이다.


핵은 적을 굴복시켜야 하거나 보다 편리한 삶을 바라는 인간의 본능과 과학이라는 외피를 씌운 오만이 결합돼 덩치를 키워왔다. 여기에 더해 지구온난화라는 또 하나의 위협이 원자력발전소를 확대시켰다. 값싸고 탄소 발생을 줄이는 깨끗한 에너지라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원전의 사고 위험과 해체 비용, 사용후 핵연료 처분 등 드러나지 않는 비용을 감안하면 화석연료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경제성이 더 떨어진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원전 1기를 짓는 데 3조원가량이 소요되는데 1986년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 사고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비용은 265조원,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따른 복구비는 최소 81조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신고리 원전 앞바다 시위 그린피스 활동가 (경향DB)


탈핵 단체들은 원자력이 저탄소 에너지라는 데 대해서도 반박하고 있다. 발전을 할 때는 이산화탄소가 나오지 않지만 우라늄을 채굴하고 농축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석탄 화력발전소를 돌려야 하는 식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원전도 막대한 탄소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원전은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원전 확대론자들은 사고 확률이 100만분의 1이라며 안전을 강조하지만 세계적으로 원전 사고는 평균 11년의 주기로 반복돼왔다. 동일본 대지진 같은 예측 불가능한 재해는 언제든지 닥칠 수 있다. 인간의 과학으로 자연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만약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유사한 방사능 누출이 한국에서 발생한다면 수십만명의 생명이 사라지고 산업 기반이 붕괴되는 치명타를 맞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원자폭탄 제조를 주도했던 오펜하이머는 뒤늦게 “나는 죽음, 곧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는 후회의 탄식을 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 역시 핵무기 개발을 독려했다가 나중에 “내 인생에 있어 한 가지 큰 실수를 했다”고 자책했다. 인류에게 원자력은 파멸의 에너지를 지닌 상대하기 벅찬 상대다.


불완전한 인간이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말한다는 자체가 모순이다. 기계의 안전성을 믿는다고 치더라도 인간의 실수나 비리는 근절하기 어렵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인적 요인이 크다. 시험성적서 위조 부품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원전의 위험성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원전 마피아’로 불리는 강고한 원전 확대 세력이 있다.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이성의 힘으로 탈핵에 나설 때다. 진드기 때문에 풀밭이 달리 보이듯이, 핵 때문에 지구가 달리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철응 산업부 기자 h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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