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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가장 비싼 상품인 ‘집’을 갖겠다는 건 이웃과 소통 않겠다는 뜻”


집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집은 가장 비싼 상품이며 대개의 사람들은 제 집을 마련하는 데 인생의 상당부분, 아니 대부분을 바친다. 오늘 전 지구를 뒤흔들고 있는 2008년 미국발 경제공황도 가난한 사람들의 내집 마련의 꿈을 악용하던 자본이 제풀에 거꾸러지면서 생긴 일이었다. 집이 그토록 중요하지만, 집을 마련하는 데 인생을 바쳐야 하거나 그로 인해 세상이 파괴된다면 대체 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서울 용산2가 해방촌엔 그 질문에 대답하려는 일군의 사람들의 ‘빈집’이 있다. 지음은 빈집의 장기투숙자이자 협동조합 ‘빈고’ 운영위원장이다.


‘빈집’이 운영하는 서울 용산동2가 ‘카페 해방촌’에 앉은 지음의 곁으로 카페가 자리한 해방촌의 정경이 흘러들고 있다. 그는 ‘만들다’라는 의미의 ‘지음’이라는 닉네임을 15년째 쓰고 있어서 본래 이름보다 더 익숙하다고 했다.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손님이 주인이고 주인이 손님인 ‘빈집’에선

같이 사는 능력만 있으면 가난해도, 집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삶의 값진 소득을 배운다

반자본주의적 마을을 고민하고 세상의 공유지를 넓혀 가는 꿈이 큰다


김규항 =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살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가는데 ‘빈 집’이군요.


지음 = 비어 있어야 넉넉하게 누구든 맞아들일 수 있고 또 무엇이든 채울 수 있으니까요.(웃음) 저희는 빈집을 ‘게스트하우스’(Guesthouse)가 아니라 ‘게스츠하우스’(Guests’ house)라고 말합니다. 게스트하우스엔 주인과 손님이 있지만 빈집은 누구나 주인이자 손님이죠. 지금 사는 사람들뿐 아니라 과거에 왔던 사람들 그리고 미래에 올 사람들 역시 모두 빈집의 주인입니다. 집의 이름도 비어 있습니다. 새로운 빈집이 만들어지면 그 이름도 새로 지어집니다.


김규항 =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지음 = 외국 여행을 하다보면 사람을 사귀게 되고 자기 집에서 재워주는 일도 종종 생기잖아요. 그게 고맙고 참 좋은데 그래도 오래 묵다보면 주인과 손님 간의 구분이나 불편함도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주인과 손님이 따로 없는 집을 생각했죠. 또 전에 활동가 생활을 조금 했는데 활동가들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수준의 활동비를 받잖아요. 그런데 같은 활동을 하는 동지인데 집이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나은데, 없는 사람들은 정말 힘들죠. 그런 체험을 하면서 집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2008년에 짝꿍하고 살 집을 구하는데 그런 생각을 구현해보고 싶었어요. 저랑 짝꿍이랑 다른 친구랑 해서 셋이 살다가 남자방 여자방 손님방을 만들어서 여럿이 함께 살기 시작했어요.


김규항 = 빈집에서 살다간, 혹은 산 사람들이 이젠 꽤 되지요.


지음 = 2008년 2월에 시작했는데 단기투숙자는 1000여명, 현재 장기투숙자는 30여명이구요. 만들어졌던 빈집이 11개고 현재 4개가 있습니다. 해방촌 카페도 있구요.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완전한 계획 하에 이렇게까지 온 것은 아니었구요. 저희가 그렇게 사니까 다른 친구도 그렇게 해보고 또 친구끼리 같이 살다가 하나가 독립하면 집을 빼줘야 하는데 그러지 말고 빈집하자 해서 된 경우도 있고 그렇게 하나둘씩 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고 하면서 온 거죠.


김규항 = 처음 집이 ‘아랫집’이던가요.


지음 = 예. 짝꿍이랑 처음 전세를 알아보러 다닐 때 부동산에서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 나중에 개발되고 돈을 번다구요. 실은 중개사 따라서 한번 가보기도 했어요.(웃음) 그런데 너무 작더라구요. 저는 여럿이 모여 살고 싶었는데 사람이 밥을 같이 해먹는다고 하면 한 여섯은 되어야 하잖아요. 그렇게 구한 집인데 주인이 전세금을 많이 올리는 바람에 사라졌습니다. 넓고 좋았어요. 옥상에 흙을 퍼올려 밭도 가꾸고. 나중에 계산해보니 흙을 1.5톤이나 퍼올렸더군요.(웃음) 아랫집과 같은 빈집이 다시 생기긴 어려울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빈집이 여럿 생겼으니 만족합니다.


김규항 = 사람에게 집은 정말 중요한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비싼 상품일 수밖에 없어요. 집 문제에 대해선 시장 논리가 아니라 사회적 제어가 필요한데 한국의 역대 정권은 보수정권이든 민주정권이든 주택이나 부동산 문제에 대해 사회적 제어는커녕 투기를 부추기고 가장 유력한 부의 증식수단으로 만들면서 이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지금 장년층은 생의 절반을 바쳐서 집을 마련했다지만 청년들은 부모의 지원 없이는 일생을 바쳐도 어려운 상태죠.


지음 = 집이 가장 비싼 상품이 되고 집을 마련하기 위해 경쟁한다는 건 내 집의 문이 굳게 닫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웃도 없고 친구도 없는, 문을 여는 유일한 사람은 도둑이죠.(웃음) 집은 내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상태에선 집은 내 가족 간에도 계산은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라게 합니다.


김규항 = 말씀대로 내 집을 갖기 위한 그런 과다한 노력과 고생이 우리를 이상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동시에 이기적이고 체제 순응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근래 청년들이 독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는데요. 청년들이 집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과 독립이 어렵다는 걸 하나로 몰아가는 것도 뒤집어 보면 그런 맥락이 숨어있지 않을까요.


지음 = 독립이 뭔지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독립이 단지 다른 사람과 같이 살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거라면, 자본이 엮어주는 관계로 살아가겠다는 것밖에 안된다고 생각해요. 가족에게 돌아가라거나 독립과 자유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구요. 억압적인 인간관계가 있다면 가능한 한 빨리 독립해야 하지만 자본 관계로부터 역시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죠. 독립은 홀로 살기가 아니라 새롭고 진정한 가족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음 빈집의 장기투숙자이자 협동조합 ‘빈고’ 운영위원장 (출처: 경향DB)


김규항 = 독립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빈고’입니다. 현황이 어떤가요.


지음 = 정식 명칭은 ‘우주협동조합 빈마을금고’죠.(웃음) 조합원은 100명 넘어가고 출자자가 88명가량에 출자금은 현재 1억원이 조금 넘는데요. 새 빈집을 만들 때 사용하기도 하고 빈집 식구들에게 소액대출도 합니다.


김규항 = 출자한 사람들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진 않겠지만 물가 상승도 있고 돈이라는 건 가만 두면 가치가 줄어드는데요. 배당 같은 게 있나요.


지음 = 처음엔 없었어요. 그걸 가지고 토론을 참 많이 했는데 지금은 3퍼센트의 배당이 있습니다. 사회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이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게 하자는 의미죠. 저희가 운영을 하다가 전세보증금엔 연 12퍼센트의 이자가 붙어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중요한 발견이었죠.(웃음) 그런데 그건 저희가 좋든 싫든 자본주의 질서가 만들어낸 것이고 그 질서 속에서 집을 빌려 운영하는 빈집이 조정하거나 통제할 방법은 없죠. 그래서 그 12퍼센트를 가지고 빈고 운영도 하고 출자자 배당도 하는 거죠.


김규항 = 돈이 지배하는 세상을 극복하려는 운동 단체에서도 많은 돈을 낸 사람은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힘을 갖기도 합니다. 빈고 출자자들은 어떤가요.


지음 = 돈을 많이 낸 사람이 특별한 권한을 갖게 되면 빈집과 빈고의 정체성이 부정되기 때문에 누가 얼마나 냈다는 건 앞세우지 않는 걸로 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묻어두고 들어가는 이자나 세금 같은 건 같이 분담하는 방식으로 시작했어요.


김규항 = 내가 낸 돈으로 여러 사람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기쁨을 ‘조용히’ 누리는 특별한 권한이군요.(웃음)


지음 = 전세도 있고 월세도 있는데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비슷한 조건으로 만들기 위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조금씩 정리가 되었죠. 근래 저희 생각은 보증금 많이 들여 전셋집을 구하는 것보다는 그 돈으로 월셋집 몇 개를 구하는 게 낫다는 쪽입니다.


김규항 =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한다는 건 세상의 질서와는 다른데 여럿이 함께 하기에 가능한 일이겠죠.


지음 = 혼자 살면서 전세 살다 월세로 가면 많이 절망하잖아요. 낙오되었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죠. 빈집은 공동체의 차원에서 빈고에서 그걸 관리하고 조정하니까 전세에 살든 월세에 살든 아무 상관이 없죠. 빈집의 주거 조건은 물론 안락한 수준은 아닙니다. 그러나 같이 사는 능력만 있으면 가난해도 살 수 있다는 것, 집 없어도 살 수 있다는 걸 깨닫는 건 우리 삶에서 큰 소득이라 생각합니다.


김규항 = 근래 공동체나 마을 만들기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은데요. 어떤 공동체들은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서울에 자기 집이 있는 사람들이 여윳돈으로 시골에 땅을 사서 공동체를 만드는 건 공동체라기보다는 좀 더 확장된 형태의 ‘내 집’을 만드는 게 아닐까요.


지음 = 말씀대로 가진 사람들이 남은 걸 가지고 공유지를 만드는 건 그 역시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행동이잖아요. 마을은 행복한데 마을에 들어가기는 어렵다면 그건 우리가 지향할 마을은 아닐 겁니다. 좌파적 마을 만들기랄까 반자본주의적 마을 만들기가 가능할까 고민합니다. 가난해도 살 수 있고 누구든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을 만들기는 세상에 공유지를 넓혀가는 노력이니까요,


김규항 = 공유지를 넓혀가려 노력할 때 비로소 마을 만들기가 곧 좋은 세상 만들기가 되겠지요. 모든 사람들이 주인인 집이라지만 선생처럼 실제 운영이나 실무를 맡은 사람들은 잠시 살다 가는 사람들과는 부담이나 책임이 다른데요.


지음 = 제가 빈집의 대변자라도 되는 양 오해될까봐 두렵지만 아무래도 할 일이 많긴 하죠. 그런데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또 저는 하다보니까 이런 일들이 참 재밌더라구요. 집이라는 게 돈으로 기여하는 것도 있지만 살림으로 기여하고 시간으로 기여하고 감정으로 기여하는 게 참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일들이 개인의 성향이나 시간이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편중되는 경향은 고민거리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주인이라면 모두 집 주인으로서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죠. 주인으로서 집을 관리하고 동네사람들을 맞이하고 살림하는 역량은 아직 부족하다고 할까요.


김규항 = 돈이나 사적 소유 같은 것에 대한 생각은 빈집이나 빈고에 참여하는 분들이라면 일정하게 공유된 것일 텐데요. 사람이란 오히려 일상에서의 어려움이랄까, 여럿이서 함께 살아간다는 게 늘 좋기만 한 건 아니라는 점의 어려움은 없는지요. 


지음 = 많죠.(웃음) 말씀대로 자본 공유는 빈고도 있고 오히려 쉬운데 공간 공유의 문제는 오히려 더 복잡한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커플이 생기기도 하는데 커플은 독립해나가는 경향이 있죠. 아무래도 현재는 장기적인 주거형태라기보다는 단기적이고 임시적인 주거형태에 좀 더 맞는 편이니까요. 그런데 그런 흐름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독립하더라도 되도록 근처로 간다든가 하면서 여러 다양한 주거형태를 만들어가려고 해요.


김규항 = 자유로운 성향을 가진 젊은이들의 마을을 넘어서 모든 사람들을 품는 마을이 되려면 다른 고민들도 필요하겠군요.


지음 = 대안학교를 나오거나 탈학교 아이들이 많이들 오거든요. 여기 머물면서 음악 지망하는 아이는 음악도 배우러 다니고 하는데요. 어리거나 아주 젊을 때는 알바 정도로도 살아갈 수 있지만 지속적인 생활 방식으로는 곤란하거든요. 경쟁 교육체제를 벗어난 그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 같은 것도 고민하고 있고 나아가서는 마을 안에서 일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가려 합니다.


김규항 = 시골이면 기본 생존에 필요한 돈이 적게 들 수도 있는데 서울 한복판에 있는 마을이라 좀더 어려운 면이 있겠군요. 그러나 여기에서 조금씩 실현된다면 모든 곳에서 현실적인 상황이 되는 것이겠지요. 선생은 전에 급진적인 운동단체 활동가였습니다. 이런 공동체 운동이 체제 변혁에 기여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의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공동체라 부르든 코뮨이라 부르든 우리끼리 체제의 가치관을 거부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면 체제가 변혁될 거라는 생각은 체제에 봉사하는 또다른 방식일 수 있다는 지적이죠.


지음 = 저의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합니다. 전혀 훌륭한 활동가는 아니었지만 빠져나와선 자전거 메신저니 빈집이니 즐겁게 살아가는 게 여전히 활동하는 분들에게 빚진 마음도 있구요. 이곳이 서울이긴 하지만 저는 귀촌해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거든요. 아직은 이 일 자체에 매달리는 형편이고 많이 부족하지만 마을 만들기가 결국 뭘 하려는 건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규항 = 모든 사람이 변혁운동과 공동체 운동을 동시에 해야 하는 건 아닐 겁니다. 두 운동이 융합할 때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이 운동에 전념하지만 저 운동이 없으면 안 된다는 존중심을 서로 가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변혁운동을 존중하고 고민하는 공동체운동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게 아쉬운 일인데 선생의 고민은 인상적이군요.


지음 = 저희가 조금은 무리해서 해방촌 카페를 만든 것도 그런 맥락이 있습니다. 우리끼리 즐겁게 살아가는 걸 넘어 세상과 섞이고 세상에 나아가려는 거죠. 이곳에서 오래 살아온 주민들에게 함부로 빈집이 어떻고 빈고가 뭐고 말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 생각하지만 카페가 그들과의 문이 되길 바랍니다.


김규항 = 카페 이름이 참 좋습니다. 해방촌 카페가 그 이름대로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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