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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노동자가 가진 건 제 몸뿐… 그걸 망가트리는 게 야간노동이다”

 

“밤엔 잠 좀 자자!” 지난해 5월 야간노동의 폐해를 사회에 확산시킨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주간연속 2교대제’ 투쟁이 1주년을 맞았다. 이 투쟁은 사회적으로 큰 호응을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자본과 지배계급 진영의 반응도 남다른 데가 있었다. 대통령은 ‘연봉 7000만원 받는 귀족노동자들의 배부른 투쟁’이라 비난했고 보수언론들은 일제히 교대제 개선은 ‘노동 혁명’을 하자는 거라 주장했다. 그들은 유성 노동자들의 싸움이 단지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하루 8시간 노동이나 주5일제 도입 같은 커다란 역사적 물꼬가 될 것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유성 노동자들은 이미 주5일제 도입을 선도한 이력이 있다. 이정훈은 유성기업이 첫 직장으로 입사한 지 25년째인 노동자다. 작년 3월 민주노총 충북본부장을 마치고 복귀했다가 27명의 동료와 함께 5월 투쟁으로 해고되었다.

김규항 = 주간연속 2교대제는 이미 노사합의가 되었던 문제지요.

이정훈 = 저희가 5년가량 준비해서 2009년에 노사합의를 했습니다. 2011년부터 실시하기로 하고 매달 한두번씩 실무위원회를 했어요. 사측에서 출장비까지 지급했죠. 2011년 5월18일 오전에 주간연속 2교대제 조합원 찬반투표를 하고 주간조 조합원들이 두시간 동안 간담회를 했어요. 그런데 사측이 20시에 직장폐쇄를 하고 용역깡패들이 들어왔죠. 22시에 야간조가 출근해서 용역들을 공장 밖으로 몰아냈는데 그날 용역깡패들이 대포차를 인도로 돌진시켜 노동자 13명이 중경상을 입었죠. 농성 6일 만에 경찰 4000명이 들어와 강제진압을 했습니다.

 

유성기업 해고노동자 이정훈씨가 지난 25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서울 덕수궁 앞 농성장을 찾아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글자판 뒤에 서 있다.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김규항 = 회사가 그렇게 나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습니까.

이정훈 =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실시를 미루고는 있었지만 직장폐쇄를 할 거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11번이나 교섭을 진행하면서 주간연속 2교대제 실행 자체에 대해선 문제 삼은 적도 없고요. 감쪽같이 우릴 속이면서 주간연속 2교대제뿐 아니라 아예 노조를 깨려고 준비해왔던 거죠.

김규항 = 원청사인 현대자동차가 배후라는 게 밝혀졌는데요.

이정훈 = 현대차 총괄이사의 차가 회사 안에 있었는데 저희가 차를 빼주다 ‘유성기업 불법파업 대응방안’이라는 문건을 발견했죠. 창조컨설팅이라는 업체에서 만든 문서입니다. 유성기업의 주간연속 2교대제가 이루어졌을 때 현대차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이 전제되어 있고 노조를 깨기 위한 시나리오는 물론 매우 구체적인 내용까지 있었어요. 카메라를 어디에 몇 대 설치하고 용역깡패 인원과 장비 등등.

김규항 = 원청사가 하청사의 노무관리를 하는 건 사실 공공연한 비밀인데요. 창조컨설팅은 ‘창조가 들어가면 노조 깨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분야의 전문기업입니다.

이정훈 = 문건에도 삼신브레이크를 어떻게 했고 발레오전장을 어떻게 했는데 유성노조는 두 회사와 조직적 차이가 있으니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있더군요. 증권거래소에 제출한 현대차 경영 자료를 보니 2011년도에 유성만 단가 인상을 26% 해주었더군요. 보통 2~3% 해줍니다. 노조를 깨기 위해 들어가는 돈을 지원하는 셈이죠. 작년에 용역깡패에게 들어간 돈만 해도 500억원은 되거든요.

김규항 = “밤엔 잠 좀 자자”라는 유성 노동자들의 구호는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습니다. 심야노동이 건강을 해친다는 건 의학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독일 의학계는 야간노동이 수명을 13년 단축시킨다고 발표한 바 있고, 국제노동기구(ILO)에선 40세 이상 노동자의 야간노동을 금지하고 있죠. 유성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이 42세가량이라 들었습니다.

이정훈 = 야간노동이 원인이 된 과로사로 한 해 한명 꼴로 죽었습니다. 기계에 말리고 일하다 쓰러지고 퇴근 버스에서 영영 깨질 않고. 야간조가 22시부터 아침 8시까지 일하고 나와서 두어시간 자면 깨요. 잠을 더 자기 위해 술을 먹고 두어시간 자고 피로가 안 풀린 상태에서 또 야간 들어가는 거죠. 새벽 두시쯤 되면 죽음 같은 졸음이 쏟아지죠.

김규항 = 공장형 닭 사육을 보면 밤에도 대낮처럼 불을 켜놓거든요. 닭이 낮인 줄 알고 계속 사료를 먹죠. 몸이 완전히 망가지지만 중요한 건 살이 얼마나 찌는가일 뿐이죠. 인간의 야간노동은 그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정훈 = 모든 생명들은 낮엔 잠을 잘 못 자요. 가축도 밤엔 자게 해야 건강하죠.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로가 밭주인들은 가로등 설치를 하려 하면 열매를 못 맺는다고 들고일어나고 그러거든요.

김규항 = 가족들의 의견은 어떤가요.

이정훈 = 대환영입니다. 야간 노동을 하면 아이들 얼굴을 거의 못 보고 삽니다. 젊은 동료들이 아이가 아빠라는 존재를 잘 모른다고 호소하곤 합니다. 주말에도 나가야 하고.

김규항 = 어용노조가 작년 7월에 생겼는데 현재 1노조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이정훈 = 복수노조 자체를 반대하진 않아요. 어용노조가 있는 회사에 민주노조가 생기면 좋죠. 문제는 민주노조가 있는 상태에서 어용노조를 만들어 민주노조를 깨는 거죠. 복수노조법이라는 게 자본이 악용하기 좋게 되어 있습니다. 민주노조가 1노조일 땐 두 노조와 개별 교섭을 하고 어용노조가 1노조가 되면 교섭창구 단일화를 해서 민주노조를 무력화하는 거죠.

김규항 = 한진중공업도 그렇고 복수노조법의 악용이 많습니다. 함께 투쟁한 노동자들도 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용노조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정훈 = 조합원은 우리가 14명이 많은데 저쪽에서 관리자 49명을 넣어서 1노조를 만들었지요. 작년 7월1일에 어용노조가 서고 싸움이 힘들어지면서 복귀자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560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넘어갔죠. 어용노조 위원장은 89년도에 노동자 의사를 무시하고 사측과 직권 조인했던 사람입니다.

김규항 = 복귀자에게 모욕적인 전향식을 치르게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정훈 = ‘모든 것들을 불법으로 인정하고 금속노조 탈퇴한다’는 각서에 서명하고 정문을 통과하면서 용역깡패들 앞에서 ‘나는 개다’를 세 번 외치게 했죠. 장년 노동자들로선 자식뻘인 청년들 앞에서요.

김규항 = 어용노조로의 이탈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까.

이정훈 = 오히려 다시 돌아오는 분위기입니다. 어용노조의 단체협상 내용들이 회사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되면서 넘어간 조합원들이 꿈틀거리는 상태입니다. 그쪽 집행부도 사측이 너무 막나가니까 조합원들을 설득하기 어려워 갑갑해하고 있어요.

김규항 = 용역을 비호하는 것도 그렇고 예나 지금이나 경찰 공권력과 검찰은 일방적으로 사측 편이라 노동자들의 투쟁을 힘들게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법원과 노동위원회에선 이기고 있지요.

이정훈 =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 부당징계는 천안지원에서 승소했고 대전고법에서도 승소했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도 부당해고, 부당징계, 지배개입, 부당노동행위가 나왔고 사측에서 중앙노동위원회로 올렸는데 이길 거라 봅니다. 특별 근로감독에서도 70여 건의 부당노동 행위가 적발되어서 과태료 10억원이 나온 상태입니다. 손배 가압류도 다 기각되었습니다.

김규항 = 천안지원에서 부당해고 판결이 나면서 ‘원심확정 시까지 근로자 지위보전을 해라’ 해서 해고자들이 임금을 받고 있는 건 이례적인 경우입니다. 요즘 이명박 욕하면 ‘개념판사’라고들 하는데 노동자에게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게 진짜 개념판사죠. 용역깡패를 비호하는 문제라든가 경찰과 검찰의 일방적인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노동자들을 많이 어렵게 합니다만.

이정훈 = 대전고법 재판 때 유성 사장이 판사에게 ‘해고자 20여명의 임금을 지급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하니까 판사가 ‘법적으로 부당해고 판결이 났는데 그럼 복직시키면 될 게 아닌가’라고 반문하더군요. 법의 상징이 저울이잖아요. 저희 편을 들어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저울에 입각하여 정확한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김규항 = 법으로 이기면서도 안심하기 어려운 건 현대차는 물론 자본진영 전체가 이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는 겁니다. 대통령도 ‘연봉 7000만원 받는 귀족노동자가 배부른 투쟁한다’고 비난한 적이 있고 보수언론은 일제히 주간연속 2교대제가 ‘노동 혁명’에 해당한다고 매도하는 것도 그런 맥락인데요.

이정훈 = 유성 특별수사본부가 127명으로 역대 최대 인원이었다고 합니다. 개구리소년 때 60여명, 화성연쇄살인사건 때 100명이 못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국가적인 사태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쪽에선 유성을 본보기로 삼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가 당하고선 부품사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 이야기가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자칫하면 유성처럼 된다는 두려움이 만연한 거죠.

김규항 = 선봉에 선다는 건 언제나 그만큼 많은 고통을 치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그놈의 ‘연봉 7000’ 이야기를 좀 하죠. 우선 유성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한 게 아니라 반대로 임금이 줄어도 좋으니 밤엔 잠 좀 자자는 것 아닙니까.

이정훈 = 저희 요구안으로도 현재 임금에서 30만~50만원 정도 줄어들어요. 노사 합의가 되면 아무래도 그보다는 더 줄겠죠. 그리고 연봉 7000만원을 받는 게 가능은 합니다. 그러려면 저 정도 경력의 노동자도 7000만원을 받으려면 야간노동은 물론 70시간 이상 잔업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계속 일하면 죽습니다. 7000만원도 적지요. 대통령은 뭐든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합디다만.(웃음)

김규항 = 현대차 같은 큰 이윤을 내는 회사도 공장이나 설비를 늘리지 않고 노동 강도를 높여 생산성을 해결하는 방식이 문제인데요. 일부 대공장 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임금을 더 받기 위해 잔업특근을 함으로써 그에 부응하는 경향도 있어 왔지요. 작업특근을 많이 따내는 게 대의원의 능력이 되기도 하구요. 그게 허울좋은 ‘귀족노동자’의 실체죠. 그에 반해 유성 노동자들은 그런 근본적인 문제와 대면하고 있습니다. 현대차도 10여년째 못하고 있는데 노조원이 100분의 1에 불과한 유성노동자들이 야간노동 문제를 사회적으로 떠올렸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중들이 ‘밤엔 잠 좀 자자’라는 구호에 많이 호응도 했지만 반대의 정서도 여전합니다. 현재 한국 노동자들이 사무직 빼곤 야간노동 안하는 경우가 없는 형편이다보니 냉소적인 반응도 보입니다.

이정훈 = ‘경기도 어려운데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 아니냐’ ‘비정규직은 100만원도 못 받는데 지들은 살 만하니까 야간노동도 안하려고 하는구나’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는 걸 압니다. 정서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야간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게 분명한 이상 우린 야간노동을 없애야 합니다. 노동자는 가진 게 몸뚱이뿐인데 야간노동은 그걸 망가트립니다. 당연히 함께 싸워서 없애야지요.

김규항 = 유성 노동자들의 승리가 결국 모든 노동자들의 보편적 현실이 되는 건데 자본과 지배계급은 유성노동자들이 특권을 누리려 하는 것처럼 매도합니다. 서로 반목하게 해서 손쉽게 지배하는 수법은 한국에서 유서 깊은 것입니다. 여전히 대중들이 현혹되는 경향도 있지만 의식수준이 예전 같지 않아서 결국 한계는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상급식을 결국 못 막아낸 것과 비슷하죠. 결국 어떻게든 실시가 될 거라 볼 때 자본은 실시는 하되 내용에서 또 뒤틀려고 할 텐데요.

이정훈 = 현대차도 그렇다고 알고 있는데 사측에선 가긴 가더라도 임금의 충분한 삭감과 노동시간은 줄어도 생산량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려 하죠. 그러나 야간노동 폐지의 의미를 가지려면 앞서 말씀대로 노동 강도로 생산량을 유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생산 시설을 확대하고 고용도 늘리자는 쪽으로 가야만 합니다. 자본 측에서는 8시간씩 3교대를 제안하기도 하는데 이건 생활 리듬이 깨지면서 건강에 더 해롭습니다.

김규항 = 유성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울 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현실을 함께 생각하며 싸우고 또 연대의 모범을 보여 왔다는 건 잘 알려진 일입니다. 노조의 요구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도 했고 여전히 유성기업엔 비정규직 노동자가 없습니다. 유성 투쟁에 연대한 젊은 활동가가 유성 노동자들을 ‘멋진 아저씨들’이라 말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존경심이 묻어나더군요.

이정훈 = 고마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특별하게 여겨질 때마다 우리 노동운동이 뭔가 많이 잘못 가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자본과 지배계급은 그렇게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면서도 노동자와 대립할 땐 철저하게 공조하지 않습니까. 이해관계가 일치되어있다는 걸 귀신처럼 알고 말이죠. 우리가 그들에게 밀리는 이유는 언제나 우리가 그들만큼 연대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고 연대하는 건 양보나 희생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싸움입니다.

김규항 = ‘멋진 아저씨들’이라는 말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웃음) 자본과 지배계급이 본보기로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꼭 이겨서 승리의 본보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유성 노동자들이 밤에 잠을 잘 수 있게 되면 머지않아 모든 노동자들이 밤엔 잘 수 있게 됩니다. 많이 분들이 연대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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