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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교수님, 말씀 좀 해 주십시오.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총리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하신 첫날의 ‘파안대소’는 무엇이며, 그 다음 다음날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보이신 ‘눈물’은 또 무슨 의미입니까? 그리고 지난 주말,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나”라고 반문하시는 그 ‘당당함’은 뭡니까? 김 교수의 종잡을 수 없는 태도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마주칠지 모르는 게 인생이니 남에게 모진 소리는 하지 말라고 어른들은 가르치셨습니다만, 오늘은 김 교수께 뾰족한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김 교수님, 모든 걸 뿌리치시고 학교로 돌아오십시오. 외람된 말씀이오나 김 교수는 지금 평상심을 잃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웃다, 울다가 또 금방 눈을 부릅뜨실 수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 김 교수는 주술에 걸린 분 같습니다. 무슨 주술이냐고요? ‘선의(善意)’라는 주술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박 대통령과 김 교수가 하신 말씀을 뜯어보니, 김 교수께서 하고 싶어 하는 그 모든 일들은 박 대통령과 김 교수의 선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정치학자인 저로서는 황당합니다. 모든 정치는 선의가 아니라, 선의의 부재, 혹은 선의의 불안정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의에 기초하는 정치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김병준 국무총리 지명자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총리직 수락 배경을 설명하며 “책임과 역사적 소명을 다하겠다”고 발언하다 울먹이고 있다. 이석우 기자

박 대통령의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돌이켜 보시지요. 박 대통령과 김 교수, 두 분이 청와대에서 마주 앉아 나라 걱정을 함께하시다가 어느 대목에 배짱이 맞아 김 교수에게 총리를 맡기기로 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입니다. 청와대를 나와 김 교수는 자신이 책임총리로서 권한을 갖기로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청와대는 고추 먹은 소리를 했습니다. 김 교수는 장관 두 명은 내 손으로 정한 것이다라는 위력시위까지 했습니다만, 국민들은 그것을 구차한 허세 정도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이 두 번째 사과 담화에서도 그 문제에 대해 가타부타 얘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김 교수의 책임총리 노릇은 오로지 박 대통령의 선의에 기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선의를 믿는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요? 김 교수께서는 박 대통령의 선의를 믿으시나요? 두 차례의 사과 담화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박 대통령은 눈앞의 어려움을 벗어나려고만 할 뿐, 자신의 잘못과 책임 있는 대책에 대해서는 진정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민의의 평결입니다. 그러니 김 교수가 총리를 맡은들 뭘 기대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진퇴양난에 놓인 김 교수가 줄곧 하신 말씀은 자신의 선의를 믿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박 대통령과 이런저런 점이 다른데, 총리가 되면 자신의 방식대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김 교수의 선의에 대해서도 신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 교수에게 총리를 맡기자는 것은 어떤 의견 수렴도 거치지 않은 박 대통령의 일방적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니 평소에 아무리 좋은 말씀을 하시는 분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드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경세가이며 화려한 변설을 구사하는 논객입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선의에 기초한 김 교수의 선의는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책임총리. 내치대통령. 무슨 말로 표현을 하더라도 그것은 한낱 말의 유희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와서 박 대통령이 김 교수에게 책임총리 노릇을 맡긴다는 선의를 문서로 쓰고, 국민들 앞에 두 손을 모아 약속한다 하더라도 김 교수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이미 야당은 박 대통령이 김 교수를 총리로 지명한 절차가 잘못되었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국정혼란을 야기한 장본인인 박 대통령이 사태 수습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입니다. 이 사태의 수습은 또 다른 주권기구인 국회에 맡겨야 할 것입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사태 수습의 동력을 만들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김 교수의 총리 지명이 국회에서 지지를 받을 가능성도 없어 보입니다. 박 대통령의 선의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김 교수의 선의는 실현가능성도 없어 보이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김 교수께서는 선의의 주술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그리고 책임총리인가 뭔가를 당장 던져버리시는 게 어떨지요. 정치는 선의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며, 민주주의는 선의의 부재, 혹은 선의의 불안정을 제도화한 것이라는 사실을 민주주의자이신 김 교수께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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