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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호가 출범했다. 대선 경선 관리가 그의 주요 임무다. 아니 대선 성공이 그가 맡은 소임이다. 그런데 걱정이다. 그의 현실 인식이 아쉽기 때문이다. 그는 당선 인터뷰에서 ‘공정한’ 경선 관리를 하겠다고 했다. 그 말의 취지는 짐작할 만하다. 자신을 지지하고 당선시켜준 주류 세력에게 유리하도록 하지 않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더민주가 서 있는 현실에서 보면 그 말은 ‘마음 편한’ 소리다. ‘공정한’ 경선 관리는 문재인의 무난한 경선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권교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추미애 대표는 더민주가 직면한 절박한 과제에 대해 말했어야 했다.

돌이켜 보라. 더민주는 원내 1당이 되긴 했으나 아직까지 혁신도 통합도 제대로 못한 상태다. 김상곤이 이끌던 혁신위는 멋진 혁신의 깃발을 들었으나 통합에는 실패했다. 혁신위는 이탈하는 비주류를 동기 불순, 능력 부족의 흠결 있는 정치인으로 ‘정리’해버렸다. 이어지던 탈당의 대열은 김종인 비대위가 들어서서야 겨우 숙지게 됐다. 김상곤의 혁신위와는 대조적으로 김종인의 비대위는 통합에는 일조했으나 혁신에는 성과가 없었다. ‘계몽 차르’로 불렸던가? 김종인은 물이 새는 더민주의 둑을 자신의 얼굴로 틀어막았다. 그러나 그가 하고자 했던 계파 패권주의 불식, 노선 조정, 행태 변화 등은 오리무중이 됐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리하자면, 김상곤의 혁신위는 혁신하려다 통합에 실패하고 결국 혁신마저 흐지부지되고 말았고, 김종인의 비대위는 통합에 성과를 냈지만 혁신에 이르지 못하고 결국 통합마저 불안정한 상황에 있다. 정치에 서툰 교수 출신 혁신위원장과 정치를 너무 많이 아는 노회한 비대위원장은 어쨌든 서로 다른 방향에서 더민주의 변화를 시도했으나 모두 미완의 과제를 남겨놓은 셈이다.

혁신과 통합을 한꺼번에 이루기는 이렇듯 어려운 일이다. 비주류를 털어내는 것이 혁신이 아니고, 주류 성향을 가진 10만 온라인 당원들의 가세가 통합이 아니라면 더민주는 더 간절해야 한다. ‘공정한’ 경선 관리와 조기 전당대회로 ‘돌파’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때를 놓치고 고뇌하고 있는 손학규에게 어디 갈 곳이 있겠는가라고 에누리 흥정을 시작할 요량인가? 심각한 얼굴로 운동화 끈을 조이고 있는 박원순, 김부겸, 안희정에게 나이가 있으니 이번에는 몸이나 풀어보라고 기운을 빼 버릴 요량인가?

‘공정한’ 김상곤의 혁신이나 ‘노회한’ 김종인의 통합이 이루지 못한 과제를 추미애 대표가 실현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주류 기득권을 과감하게 혁파하는 창조적 기획이 필요하다. 그게 구체적으로 뭔지는 잘 모르겠다. 추미애 대표가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가을 전어처럼 더민주를 만들겠다고 했다. 매력이 있는 정당이 되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좋다. 그렇게 하려면 기세등등한 저 주류 함성의 볼륨을 낮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몸을 던지겠다’고 평소 그답지 않게 비장한 말까지 한 손학규지만 이런 위험한 운동장에 몸을 던질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스마트한 경기 매너로 새로운 솜씨를 선보이며 지지를 얻어가려고 하는 박원순, 김부겸, 안희정인들 상대편의 문전 실수라는 요행밖에 기회를 만들기 어려워 보이는 경기장에서 어떻게 자기의 기량을 펼 수 있겠는가?

추미애 대표가 할 일은 문재인이 후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경기장을 만드는 것이다. 오해는 하지 않기 바란다. 문재인이 후보가 되지 않아야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래야 더민주의 역동성이 생길 것이다. 지금과 같은 동종교배의 상황에서는 결코 생명력이 나올 수 없다. 다양성과 치열한 경쟁 과정이야말로 더민주 대선후보를 단련시킬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자신의 열성 지지자들에게 배타적인 말과 행동을 자제하라고 한 것은 사태를 바로 인식한 것이라 하겠다. 주류의 함성이 경기장을 압도하는 가운데 제대로 된 경기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런 ‘자제’ 정도로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것 같지는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몽준과 힘을 합해야만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자신이 후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현기증 나는’ 경선 과정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의 경쟁력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승리로 이어졌다. 노무현이 훌륭한 것은 그가, 몰아치는 돌파능력은 물론 과감한 기획, 그리고 건곤일척의 승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용기를 가졌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하나는 문재인의 몫이고 하나는 추미애의 몫이다. 추미애 대표가 할 일은 아찔한 경쟁 상황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정치 기획이다. 그저 공정한 경선관리가 아니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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