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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이 세상을 떠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뭐가 잘못된 일인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것 하나 분명한 게 없다. 국가폭력이 시위진압을 위해 불가피했다는 낯 뜨거운 답변만 현실을 조롱하듯 허공을 맴돌고 있다.

사람이 죽었다고 꼭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경찰청장의 말은 아마 2016 화제의 어록을 장식할 듯하다. 그의 사전에는 경찰이 물대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권한만 있지,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써야 한다는 규칙은 없는 모양이다. 세상 물정 어두운 교수도 물대포는 사람에게 큰 위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하려면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리고 물대포를 실제 사용할 때는 특별히 신중해야 한다는 것쯤은 지침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짐작할 수 있는 상식이다. 전해 들은 바로는, 물대포는 우선 시위대의 머리 위로 물을 흩뿌려야 한다. 처음부터 사람의 몸을 향해 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접 시위대를 향해 쏠 경우에도 사람의 상반신으로 쏘지 않아야 한다. 이런 것들이 하나라도 지켜졌는가?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대회 당시 경찰이 직사한 물대포에 맞고 의식불명에 빠졌던 농민 백남기(70)씨가 사고 317일만인 25일 숨을 거둔 가운데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조문이 이뤄지고 있다. 김창길 기자

백남기 농민에 대한 국가의 폭력은 정당하지 않았다. 무자비하게 직사한 물대포에 쓰러진 이후에도 백남기 농민은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 몇 언론들은 미국 경찰의 총에 맞아 흑인이 사망했다는 뉴스는 중계 방송하듯이 보도를 하면서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일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국가가 시위에 참여한 나이 많은 농민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사망하게 한 사건이야말로 세계적 뉴스가 아닌가. 우리나라가 과연 인권을 잘 지키고 있는 나라인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심을 한 번 더 강화시키는, 부끄러운 세계 토픽이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그것이 언제 우리 자신의 일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국가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은 자초지종을 따져서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 추궁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고 있다.

더 암담한 현실은, 정부의 누구도 백남기 농민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가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작년 가을 백남기 농민은 가을걷이를 마치고 ‘아스팔트 농사’를 짓기 위해 서울로 왔다. 우리나라 농민들은 봄, 여름 뙤약볕에서 일을 하고 가을 추수를 끝낸 후 한 번 더 지어야 할 농사가 있다. 아스팔트 농사다. 이 농사는 땀 흘린 대가를 제대로 받기 위한 농사이며 농민이 제대로 된 사회적 대접을 받기 위한 농사다. 이미 아련한 역사가 되어버린, 1970년대 유신체제의 얼음공화국을 뚫고 솟아올랐던 함평고구마 싸움의 깃발, 1980년대 군부정권의 공포를 밀어내고 가을 하늘에 펄럭이던 고추 제값 받기 투쟁, 수세 싸움의 깃발 등이 아스팔트 농사다.

백남기 농민이 지으려고 했던 아스팔트 농사는 ‘쌀값’이었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쌀값은 해마다 내리막길이어서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시름은 날로 깊어지고 있었다. 쌀소비는 줄어들고 있고, 해외에서 수입하는 쌀은 늘어나고, 정부의 지지정책은 미지근하여 쌀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많아지고 있다. 백남기 농민은 이런 문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평생 민주화운동, 농민운동을 한 사회운동가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농민으로서 간절히 할 얘기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쌀농사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쌀은 단순한 먹거리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정체성의 중심, 안보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존재이다.

그렇다면 포기하지 말자. 쌀 소비를 늘리는 방법도 더 적극 생각해보자. 남는 쌀이 있으면 북한 동포에게 보내는 것도 방법이 아니겠나. 그러면 남쪽도 좋고 북쪽도 좋은 일일 것이다. 쌀이 가지고 있는 비경제적, 비교역적 성격을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백남기 농민의 주장이 저 무도한 직사 물대포에 산산이 부서진 후, 올해의 쌀값은 더 절망적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암담한 상황에 대한 처방이 고작 농지를 줄이는 것이라고 하는 정부의 말을 들으니 농민들의 아스팔트 농사는 한층 더 절실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백남기 농민의 고통스러운 생애의 마지막이 더 애달프다. 317일 동안의 병상에서도 그가 일구고 있었을 ‘아스팔트 농사’가 올가을에도 제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먼 길을 떠나는 그가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있는 것 같다. 용서를 빈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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