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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6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생각이나 판단의 바탕은 보는 것과 듣는 것입니다. 두 행위에 대한 믿음은 편애 수준입니다. 더군다나 보고 들은 것이 직접 이루어졌다면 그 믿음은 여간하여서는 깨지지 않을 만큼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직접 보거나 들었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으며, 때로 사실조차 아니라는 점입니다.

알을 품고 있던 어미 원앙이 먹이 활동을 위해 나무 둥지를 잠시 나서고 있다(왼쪽 사진). 둥지에서 알을 깨고 나와 자라난 아기 원앙이 몸을 던져 처음으로 둥지를 떠나고 있다.

‘원앙’ 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부부 금실이 좋은 새입니다. 그렇게 들었기에 굳게 믿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원앙은 번식생태가 독특합니다. 물가 덤불이 아니라 숲에서 알을 낳습니다. 알을 낳는 공간은 나이 든 나무가 썩어서 생기는 수동(樹洞)입니다. 마땅한 수동이 없으면 까막딱따구리의 둥지를 빼앗기도 합니다.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동안 수컷은 암컷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챙깁니다. 알은 하루에 하나씩 15개 안팎으로 낳고, 알을 낳는 동안 둥지는 비워두며, 알을 모두 낳은 뒤 품기 시작합니다. 알을 낳을 때 수컷이 보이는 애정 역시 각별합니다. 둥지에 같이 와주고, 알을 낳는 동안 밖에서 기다려주며, 암컷이 나오면 쉼터로 안내합니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원앙은 금실이 좋다고 소문난 모양입니다. 그런데 수컷은 여기까지만 합니다. 원앙 수컷의 모습은 화려함의 완성이라 불립니다. 밖에서 보이지도 않는 어둑어둑한 수동에 들어앉아 알을 품어야 하는데 화려함으로 치장할 까닭이 없습니다. 수컷은 알을 품지 않습니다. 암컷이 알 품기에 들어서면 수컷은 아예 떠나버립니다.

암컷 홀로 알을 품습니다. 기간도 길어 한 달입니다. 다른 새는 암수가 교대로 품거나, 암컷 혼자 품을 경우 수컷은 먹이도 나르며 뒷바라지를 하는데 원앙 곁에는 수컷이 없습니다. 알 품기에 들어서면 알은 발생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변화가 진행 중인 알의 온도가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생명체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둥지를 비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렇더라도 혼자서 한 달을 먹지 않고 버틸 길은 없습니다. 어미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를 비웁니다. 통 트기 전과 해가 진 직후로 30분씩 두 번으로 나눠 비울 때가 가장 많으며, 둥지를 비울 때는 제 몸에서 뽑은 털로 알을 덮어놓고 나갑니다. 나머지 23시간은 고개 한 번 내밀지 않고 알을 품습니다. 만약 동 튼 시간부터 해가 지기 직전까지 한 달을 본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판단할 것입니다. “저 둥지는 비어있네.”

오늘은 어미의 행동이 평소와 다릅니다. 둥지를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오전 먹이활동은 건너 뛸 모양입니다. 오후 1시 무렵입니다. 새벽 4시부터 지켜보았으니 이미 9시간이 지난 뒤입니다. 드디어 어미가 둥지 밖으로 고개를 내밉니다. 그런데…. 멀리 날아가지 않고 바로 앞 나뭇가지에 앉더니 둥지를 향해 “끄액, 끄액” 소리를 냅니다. 알을 깨고 나온 아기 원앙들을 부르는 소리입니다.

아…. 아기 원앙이 고개를 내밀더니 거침없이 허공으로 몸을 던집니다. 날개가 발달하지 않았으니 달리 길이 없습니다. 첫째가 둥지를 떠나니 바로 둘째가 꼬리를 잇듯 둥지를 떠납니다. 셋, 넷, … 아홉, 열. 아기 원앙은 모두 10마리. 열 마리가 둥지를 떠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70초였습니다.

바로 앞 덤불 속 어딘가에 10마리의 귀여운 아기 원앙이 있겠지만 다가서는 것은 삼갑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니 한 줄로 늘어선 원앙 가족이 계곡을 향해 이동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역시 가까이서 만나고 싶은 마음은 누릅니다.

그렇게 3시간이 또 흘렀습니다. 계곡으로 향한 지 오래니 원앙 가족은 계곡을 따라 하천이나 강에 이르지 않았을까 싶을 때였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뵈지 않을 빈 계곡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도 얹어서요. 그런데…. 내 생각과 다릅니다. 원앙 가족은 아직도 계곡에 있습니다. 어미 원앙은 물길 따라 쉽게 떠내려가는 길을 버리고 반대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거친 물살에 밀리고 또 밀려 얼마 올라가지도 못했습니다. 험한 세상과 맞서는 일은 알을 깨고 나온 첫날부터 시작됐습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으로 살아가는 내게 자연은 오늘도 속삭입니다. “직접 보았어도 다 본 것이 아닐 수 있단다. 직접 들었어도 다 들은 것이 아닐 수 있어. 무엇을 판단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사람에 대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김성호 | 서남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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