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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제 사실이 아닌 거짓된 뉴스. 인터넷을 찾아보면 ‘가짜뉴스’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가 이렇게 나온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 보도의 형식을 하고 유포된 거짓 정보’라고도 정의하고 있다. 유포의 목적이 뚜렷하다는 점이 가장 특징적이라 하겠다. 재미 삼아 한번 해보는 거짓말이거나 실수로 잘못 옮긴 말이 아니라 의도와 목적이 분명하다. 당연히 고도로 기술적이고 계산된 수단이 쓰인다. 내용의 진실 혹은 사실 여부는 물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얼마만큼 유포되고,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때로는 유포자뿐만 아니라 소비자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듯싶다. 믿고 싶은 뉴스, 그랬으면 하는 뉴스, 그럴 줄 알았다는 뉴스, 그런 것들에 대한 열렬한 반응들.

역사적으로 위와 같은 사례들은 너무 많고, 충격적인 것들 역시 많다.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지만 당시에는 파급력이 너무 커서 역사를 바꾸는 결정적인 키가 되는 것들도 있었다. 불행히도 역사가 바뀐 뒤에야 그것이 ‘사실은’ ‘가짜’뉴스였다는 것이 밝혀지는 경우가 더 많다. 정보의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조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혐오와 증오를 넘어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옛날에 살던 동네의 재래시장에는 진짜원조참참기름집이 있었다. 그 참기름이 그저 참기름이 되기 위해서는 진짜와 원조와 참을 두 번이나 거쳐야 했던 것인데, 이 가짜뉴스들에는 거를 수 있는 거름망조차 보이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가짜뉴스’에 관한 기록을 하나 소개해드린다. 중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고 싶었던 위안스카이에 관한 일화다. 우리나라에서 원세개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이 인물은 조선에서 머물던 10여년 동안 각종 포악하고 오만한 짓을 다 하여 조선의 국권을 침탈했다. 오죽했으면 그는 조선을 감시, 관리한다는 의미의 ‘감국대신’으로도 불렸다. 조선에서 쌓아올린 그의 경력은 중국으로 돌아간 이후 승승장구하는 권력의 기초가 되었고, 그는 청나라가 멸망한 후 중화민국의 제1대 대총통이 되었다. 그러나 총통의 자리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국민들에게 돌아갔던 정권을 폐기하고 다시 제국으로 돌아가도록 여론 조작을 하는 데 성공했고, 그 자신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래서 중국의 마지막 황제는 사실 우리가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보았던 선통제 푸이가 아니라 바로 이 자, 홍헌제 원세개다. 다만 역사가 인정하지 않는 황제일 뿐이다.

이 자도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여론이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래서 신문을 열심히 챙겨 보았던 모양인데, 그때에도 가짜뉴스를 쏟아내는 언론이 있었겠으나 동시에 그를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도 있었을 것이다. 원세개의 아들은 차마 그런 신문을 아버지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효심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황제가 되고자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랐을 터이고, 본인부터 그 뉴스들을 가짜뉴스라고 믿고 싶었을 것이고, 아니면 가짜뉴스가 아니라서 더 끔찍하게 싫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는 신문을 통째로 다시 만들어버렸다. 새 신문사를 만들어 새로운 신문을 창간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신문을 통째로 가짜뉴스로 채워 새로 인쇄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원세개만을 위한 단 한 부의 신문이 탄생했다.

이쯤 되면,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가짜뉴스 한두 꼭지로는 성에 차지 않아 완전히 새로 만들어버린 가짜신문. 오래전의 일이고 남의 나라 일이니 가짜도 이 정도면 스케일이 다르다며 기막혀 하고 말아야 하나. 다행히 원세개는 황제의 자리에 고작 81일을 머문 후 퇴위했다. 여론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가짜는 한 사람을 속일 수 있고, 역사의 어떤 한 순간을 결정적으로 속일 수도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남김없이, 적어도 한순간 동안만큼은 깜빡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못한다.

원세개가 매일 아침 읽던 신문이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되는 에피소드가 재밌다. 그의 딸이 어느 날 하녀를 시켜 길거리 음식을 사오게 했는데, 그걸 포장한 종이가 ‘진짜신문’이었던 것이다. 딸이 그 진짜신문을 보고 혼비백산했을 것은 물론이다. 딸이 아버지에게 그 신문을 보여주었을 때, 원세개 역시 혼비백산했다. 그러나 부끄러워하는 대신 분노했다. 자신을 속인 아들에게, 그리고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여론에 대해.

당시 길거리에서 나뒹굴던 신문, 만두나 꽈배기 같은 걸 싸주던 신문들, 그런 걸 민의라고 해두자. 신문만 있고, 그 신문의 기사만 있었던 게 아니라 거기에 얹혀진 여론이 있었을 테니. 한 사람이 자기만의 몽상에 빠져 있는 동안, 세상은, 길거리에서 뒹구는 종이 한 장조차도 진실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발에 밟히는 하찮은 것조차도 말이다. 

여론이 모이면 그렇게 힘이 된다. 그러나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데미지는 남는다. 그 데미지를 치유하기 위한 역사의 손실도 크다. 가짜뉴스와 힘껏 싸워야 하는 이유겠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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