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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사태 이후, 많은 일본 시민들은 ‘핵 없는 세상’을 절규하며, 정부에 원자력 정책의 변경을 요구하는 크고 작은 시위를 계속해왔다. 그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의 발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의 하나는 노벨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말이었다. 그는 엄청난 원자력 재해를 겪고도 기존 원자력 정책을 완고하게 밀고 가려는 정부와 지배층의 태도에 절망하고, 그것을 “우리는 모욕 속에서 살고 있다”는 말로 표현했다.

나는 오에 겐자부로를 별로 중요한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반핵 시위에 적극 참여할 뿐만 아니라 시위대 앞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는 사실 하나로 그를 다시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발언은 오늘날 일본을 비롯해서 한국, 나아가 세계의 지식인, 작가, 예술가들이 느끼는 심적 고통을 가장 핵심적으로, 가장 간명하게 드러낸 말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조금이라도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로서는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나날의 연속이다. 특히 ‘말’을 가지고 먹고사는 지식인들에게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합리적인 언어와 생각이 끊임없이 경멸을 당하고,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말들이 압도적으로 난무하는 현실이다.

생각해보라. 후쿠시마 사태는 얼마나 가공할 핵 재해인가.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앞으로 망가질 사람들이 속출할 게 아닌가. 뿐만 아니라 사고 원전의 수습은 속수무책인 채, 땅과 바다는 방사능으로 돌이킬 수 없이 오염되고 있다. 이 상황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기약도 없다. 그런데도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기득권층과 정부와 주류 미디어는 아무 반성의 기미도 없이 원자력 이외에 대안은 없다는 입장만 고집하고 있다. 대안에너지와 생태적 생활방식으로 전환함으로써 ‘핵 없는 세상’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음을 많은 지식인, 과학자, 탈핵운동가들이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가지고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힘 있는 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탈핵의 논리가 불합리하거나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도 탈핵의 논리가 옳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경청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기왕의 원자력 체제 덕분에 누리고 있는 그들 자신의 권세와 지위와 부를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합리적인 언어와 생각이 아니라 기득권세력의 억지 논리가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이 터무니없는 ‘모욕적인’ 상황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할 것인가. 원자력 문제는 한가지 예에 불과하다. 세월호 사태에 대한 반응을 통해 우리는 책임질 줄 모르는 권력의 모습과 기득권 세력의 뿌리 깊은 부도덕성, 비인간성을 너무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는 또 광범한 시민적 합의를 통해 어렵게 도입된 ‘무상급식’을 자신들의 공약사항이 아니라며 허물어뜨리려 하고 있다(‘경제민주화’라는 핵심공약을 내팽개친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아무리 몰상식한 정치라 하더라도 기왕에 시행하던 프로그램, 그것도 나이 어린 학생들의 밥에 관한 것을 중단시키고 싶다면, 합당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엄청난 무기를 사들일 돈은 있고, 아이들 밥 먹일 돈은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이런 상황에 대해 우리가 한탄만 하고, 권력자들을 비난하고, 질 낮은 정치에 대한 혐오감만 표출하고 있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그래봤자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난을 하고, 비판을 한다고 해서 정치판의 꼼수가 사라지고, 권력자들의 자질과 생각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선거구 조정이 필요하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자마자 농촌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허둥대는 모습은 이른바 ‘정치인’들의 관심은 첫째도 둘째도 그냥 권력의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것임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지금 우리 농촌과 농민은 정부가 광적으로 밀어붙이는 ‘자유무역협정’들로 인해 완전히 파국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그 농촌 지역구 의원들은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본 적이 있는가? 그런 ‘정치인’들이 선거구 변경으로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지지 않을까, 안절부절 노심초사하고 있는 정경은 가증스럽기보다 희극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결국 문제는, 정치인 혹은 권력자들의 개인적 자질이 아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현재의 선거제도와 그것에 기반을 둔 대의제 정치시스템 속에서는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정치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새누리당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이 26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개헌 문제와 관련, "저보고 헌법을 바꿔달라고 하는 사람(국민)은 아직 못봤다"고 발언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대부분의 사람은 정말 ‘좋은 나라’에서 잠시라도 살다가 죽고 싶어 한다. ‘좋은 나라’란 별 게 아니다. 합리적인 말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이다. 그런데 그런 나라를 위해 시급한 것은, 지금과 같이 돈과 조직과 혈연, 지연, 학연 따위의 음성적인 연줄, 그리고 무엇보다 부패한 기득권 세력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선거제도의 근본적인 혁파이다. 오늘날의 선거제도는 지배층의 영구적 권력 유지를 돕는 메커니즘일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 지배층에는 야당 정치인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의 최우선적인 관심사는 자신의 특권적인 신분 보지(保持)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니까 결국 의지할 곳은 우리 자신뿐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지금 정치판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개헌문제에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이대로 가면, 개헌은 또다시 여야 정치인들 사이의 주고받기 놀음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개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개헌은, 지금과 같이 꽉 막혀있는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최적의 방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 안된다. 예를 들어,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로 사실상 국가적 파산에 직면했던 나라들, 예컨대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될 것은, 개헌 작업의 주체가 기성의 정치가들이 아니라 시민들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에서는 제비뽑기로 선출된 시민대표들이 장기간 주말마다 모여 전문가들의 도움 속에서 선거제도와 헌법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를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진행했고, 그럼으로써 보통의 시민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의 강화만이 세상을 살리는 길임을 다시금 깨우쳐주었다.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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