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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그대가 경성에 쳐들어간 뒤 누구를 추대할 생각이었는가?

답: 일본군사를 물리치고 간악한 관리들을 몰아내어 임금 곁을 깨끗이 한 뒤 주춧돌처럼 믿음직한 몇 사람의 선비를 내세워 정치를 하게 하고, (나는) 시골로 돌아가 평상의 직업인 농사에 종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국사를 한 사람의 세력가에게 맡기는 것은 큰 폐해가 있었음을 알기에 몇 사람의 명사들이 협의하고 화합하는 합의법에 따라 정치를 담당하게 할 생각이었다.

이것은 동학농민전쟁을 이끌었던 ‘녹두장군’ 전봉준 선생이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뒤 진행된 심문 과정에서 일본영사와 나눈 문답내용이다. 이 내용은 1895년 3월6일자 ‘도쿄아사히신문’에 ‘동학수령과 합의정치’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전봉준 장군의 이 ‘합의정치’ 개념은 놀랍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학자 김정기 교수의 말대로 “이 하잘것없어 보이는 몇 줄의 기사에는 조선의 정치를 뒤집을 폭발력이 내장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새로운 통치체제 구상이 어떤 외래 사상에서 빌려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자신이 그 충실한 일원이었던 유교사회의 민본주의 이념과 부패한 정치현실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통해서, 또 무엇보다 그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처절한 투쟁을 통해서 획득한 예지의 산물이었다.

부패하고 무능한 지배층과 외세의 침략에 맞서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궐기했던 갑오동학농민전쟁은 세계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뛰어난 사상적 운동·투쟁이었다. 물론 이 싸움의 결과 수십만의 민초들이 살육을 당했고, 나라는 망국의 길로 빠져 들어갔다. 그런 점에서 동학농민전쟁은 실패한 운동이지만, 그러나 결코 헛된 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민초들의 참혹한 희생과 피눈물을 통해서, 민중이 주인으로 사는 세상, 즉 정말로 ‘됴흔’ 나라란 어떤 나라인지, 그 정치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전봉준 장군 심문기록에 드러난 국가체제 구상의 핵심은, 지방은 (실제 동학혁명 당시 전라도에서 광범하게 시행된 것과 같은) ‘집강소’ 체제에 의한 철저한 자치, 그리고 중앙은 ‘합의정치’에 의한 독재의 배제였다.

1894년 수만명의 농민군이 집결하여 동학농민운동의 시작을 알린 장소인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에는 1989년 ‘동학혁명백산창의비’가 세워졌다. (출처 : 경향DB)


동학혁명 이후 120년 동안 우리는 엄청난 역사적 격변을 겪으며 우여곡절 끝에 소위 근대국가의 외양을 갖추고 근대적 산업을 일으키면서 제도상의 민주주의를 운영해왔다. 그러나 슬프게도 가장 중요한 역사적 과제는 아직 미실현 상태이다. 동학농민들이 피눈물로 염원했던 ‘됴흔’ 나라로부터 우리는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 동학의 지도자와 농민군들이 살아서 되돌아와 지금 이 나라를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다른 것은 그만두고, 세월호 문제에 대응하는 오늘의 한국정치는 절망적이라는 말로써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의 존재 그 자체를 의심케 하는 일대 역사적 재난이었다. 그러나 사고 이후 다섯 달이 지난 지금 우리는 세월호 사고 그 자체보다도 더 끔찍한 상황에 처해 있다. 세월호 진상규명 방식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실로 허망하고 무익한 정치적 소동 때문이다.

지금 집권세력은 국가의 계속적인 존립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자신의 과오를 뼈아프게 인정하고 성역 없는 조사에 적극 협력해야 할 절대적인 도덕적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온갖 억지 논리로써 적당히 이 상황을 넘어가기 위한 술책을 부리기만 하고, 이에 대항해야 할 야당은 무능과 어리석음만을 보여준 끝에 드디어 자멸적인 분열과 혼돈상태로 추락하고 말았다. 어느 쪽도 정치란 무엇인지 최소한의 안목도 책임 있는 자세도 보여주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리하여 사실상 이 나라의 정치는 지금 작동 불능 혹은 부재 상태이다.

이 상황에서 정치가들이 끝없이 비난을 당하고, 정치 자체가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러한 정치다운 정치의 실종은 반드시 정치가들 자신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물론 정치가들의 자질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것은 역시 정치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시스템이 근본적인 결함을 내포한 이상, 설령 유능하고 정의로운 정치가일지라도 실제로 효과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는 크게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다 알다시피 오늘날 한국정치의 근본문제는 모든 권력을 대통령이 독점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는 데에 있다. 지금 이 나라는 민주공화체제라면 반드시 작동해야 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거의 완전히 붕괴된 상태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헌법기관’임에도 여당의원들은 오로지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것을 자신들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고, 검찰은 말할 것도 없지만 사법부조차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느라고 조심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이것이 바로, 군사독재정권과 싸워서 민주화를 쟁취한 지 25년 이상이 된 지금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이다. 왕조 말기 동학농민군이 궐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과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정치현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세계는 상투적인 국익논리나 성장, 개발 따위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으로는 더 이상 미래를 열어갈 수 없는 엄중한 역사적 전환기에 처해 있다. 이 상황에 슬기롭게 대처하려면 과거 어느 때보다도 합리적인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합리적인 정치란 한마디로 공공의 정신에 충실한 정치이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과 정치가들의 활발한 토의와 대화를 통한 의사결정 과정으로만 성립할 수 있다.

결국, 전봉준 장군이 구상했던 자치와 합의의 정치만이 합리적이고 건강한 정치를 보증할 수 있는 것이다. 오로지 최고 권력자 개인의 인간적 자질과 품성과 능력에 정치적 의사결정이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 있는 시스템이 얼마나 무책임한 정치, 어리석은 국가운영을 초래할 수 있는지 지금 우리는 매일매일 끔찍하게 실감하고 있다. 우리는 정치가들 개개인을 비난하기 이전에 먼저, 이 의롭지 못한 허망한 정치의 구조적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작업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120년 전으로 되돌아가 전봉준 장군의 국가체제 구상을 깊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합의정치’와 집강소 중심 지방자치 체제를 구상하고, 그 일부는 실행도 했던 녹두장군의 정치사상은, ‘됴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모두의 영감을 자극하는 사상적 원점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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