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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 이 난에서 나는 ‘깊은 민주주의가 세상을 살린다’라는 제목 밑에서 ‘깊은 민주주의’의 실천적 모범사례로 덴마크의 ‘시민합의회의’라는 제도를 소개했다. 내가 ‘깊은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당연지사로 여기는 ‘선거에 의한 대표자 선출’이라는 제도가 기실은 선거를 통해서 기득권 세력의 영구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우리가 정말로 좋은 삶을 누리려면 일반시민이 명실상부한 정치의 주체가 되는 대안적인(혹은 새로운) 시스템을 긴급히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깊은 민주주의’는 지금 세계 도처에서 갈수록 위축돼 가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소생시킬지 고민하고 모색하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 쓰는 용어이다. 이 용어가 널리 쓰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대명사가 돼있는 대의제민주주의가 엄밀히 따지자면 ‘얕은 민주주의’ 즉, 허울뿐인 민주주의라는 비판적 성찰 때문이다.

대의제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정당성의 근거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보통선거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오늘날 선거란 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에 의해 원천적으로 조작·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전혀 공정하지도, 자유롭지도 못한 게 선거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선거에서는 누구를 무엇 때문에 뽑아야 하는지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투표를 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자신의 한 표가 선거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아예 투표를 하지 않는 시민들도 다수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투표를 해봤자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정당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선거제도의 근본적인 허구성을 알려주는 분명한 징표이다.

이런 정치시스템 속에서 국가나 지역사회의 주요 현안들에 대해 시민(혹은 주민)들의 의사가 옳게 반영되리라고 기대하는 게 잘못일 것이다. 정치라면 모두들 환멸과 절망을 느끼고,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냉소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냥 속수무책으로 지낼 것인가? 우리는 지금과 같은 허울뿐인 민주주의의 근본문제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민주주의의 재생 가능성을 치열하게 탐색해야 할 게 아닌가? 우리가 언제까지나 노예로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민주주의의 재생 가능성을 오랫동안 천착해온 사람들이 도달한 결론의 하나가 ‘숙의민주주의’라는 개념이다. 덴마크의 ‘시민합의회의’는 바로 이 숙의민주주의의 모범적인 실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숙의민주주의에는 시민합의회의 말고도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숙의여론조사(deliberative polls)’나 ‘시민배심제’ 등은 실제로 이미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실험적으로 운용되어왔다. 그리고 이 실험들은 ‘숙의민주주의’라는 유용한 정치적 기술을 통해서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정신과 원칙이 오늘의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소생될 수 있다는 것을 훌륭히 보여주고 있다.

국정감사 이틀째인 8일 오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류길재 통일부장관이 기조실장과 답변을 숙의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덴마크의 시민합의회의는 원리상으로는 정치적·사회적 문제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지만 어쨌든 아직까지는 과학기술 문제에 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숙의여론조사’라는 것은 거의 모든 정책사항에 적용되면서 이미 오스트레일리아, 유럽연합, 태국, 미국, 영국 등 다수 국가에서 실험적으로 실천돼 왔다. 그 중에서 특기할 만한 사례가 있는데, 그것은 중국의 웬링시(溫嶺市) 제구오진(澤國鎭)에서 2004년 이후 계속 시행되고 있는 ‘숙의여론조사’이다.

상하이 남쪽 300㎞에 있는 제구오진은 97개의 마을과 20여만의 인구로 구성된 향촌지역이다. 이 지역의 행정책임자들은 중국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계획된 공공사업은 많은데 예산은 부족한 재정상황 때문에 심히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계획된 공공사업들은 예외 없이 시급한 현안들이지만, 재정 형편상 상당수의 계획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사업의 우선순위 책정을 행정책임자들이 직접 하거나 전문가들에게 맡기지 않고, 주민들의 의사에 따르기로 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2004년에 그들은 ‘숙의여론조사’의 창안자라고 알려진 미국의 스탠퍼드대학 교수 제임스 피시킨과 그의 중국인 동료 학자들을 초청하여 주민들의 ‘숙고된’ 의견을 듣는 절차를 진행하도록 의뢰했고, 이 숙의여론조사 결과를 지역인민위원회에 회부하여 통과시켰다.

제구오진에서의 숙의여론조사는 먼저 250명 정도의 주민을 무작위 제비뽑기로 선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렇게 뽑힌 주민들은 며칠 동안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관련 사항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고, 여러 개의 분과로 나뉘어 활발한 토론을 거친 다음에, 한정된 예산을 다리와 도로 건설에 쓸 것인지, 혹은 노인복지나 학교를 짓는 데 쓸 것인지 등등 나름대로 결론을 모아 주민들의 의견을 제시했다.

흥미로운 것은, 전혀 글자를 모르는 주민도 이 숙의여론조사 패널에 뽑혀 당당히 참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주민명부에 의한 무작위 추첨제 방식으로 참가자들을 선정했기 때문이다. 하기는 글자를 모른다고 해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르는 것은 아니고, 현안에 대하여 전문가들의 조언을 충분히 듣는다면 어떤 유식자 못지않게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할 까닭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분과 토의에서 사회를 맡은 그 지역 교사들은 소수에 의한 토론의 독점을 막고, 모든 참여자에게 공평한 발언과 질문의 기회를 보장했기 때문에 글자를 모른다는 것이 별로 장애가 될 수 없었다.

그 이후 제구오진은 공공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뿐만 아니라 지역예산을 편성하고 심의하는 과정에서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도록 이 숙의민주주의적인 방식을 계속적으로 진행하여 이제는 그것이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라고 폄훼하고 있는 중국에서의 이야기다. 선거로 선출되었다는 단 하나의 근거로 국민(혹은 주민)들의 의사는 묻지 않고 마치 제왕처럼 군림하는 정치지도자, 행정책임자들에게 너무나 길들여진 우리로서는 그저 부러워만 하고 있어야 할까? 잘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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