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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용문산에 큰 눈이 내렸다. 설산은 거대한 침묵이었다. 정월 대보름, 스님들의 동안거(冬安居)가 끝나는 날이었다. 수행을 마친 스님들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상원사 용문선원에서 선방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동안거는 음력 10월15일에 시작해서 이듬해 1월15일까지 석 달 동안 이어진다. 화두 하나씩 품고 낙엽을 밟으며 선방에 모여든 선승들. ‘이번 겨울엔 성불하리라.’ 그들의 결기로, 또 눈빛으로 한국불교는 살아있다.

조선불교도 경허 선사의 한 평짜리 방에서 중흥의 기운이 뻗어 나왔다. 경허는 연암산 천장암 구석방에서 눕지 않고 정진했다. 누더기 차림에 미동도 없는 경허를 뱀이 들어와 지켜봤다. 경허의 깨달음은 달빛이며 죽비였다. 선방을 은은히 비추고 수좌들을 벼락처럼 두들겨 깨웠다. 한 평짜리 방이 조선의 선풍을 다시 일으킨 기적의 공간이었다.

숱한 추문과 비리로 불교계가 들끓어도 선승들은 구도의 여정에 나선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깨쳐야 중생을 교화할 수 있다. 화두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것은 마음을 닦고 또 닦음이다. 그렇게 마음이 먼지 하나 없이 맑아지면 비로소 마음에 자신의 본래면목이 나타난다. 하지만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멀고 험하다.    

선방에는 어떤 움직임도 없다. 선객들은 벽만 보고 있다.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겉만 그럴 뿐, 안에서는 거대한 파도가 일렁이고 번개가 친다. 저마다 번뇌를 베고 망상을 부숴야 한다. 날마다 절망하고 그 절망을 부숴야 한다. 앉은 뒤태만 봐도 공부의 깊이를 알 수 있다. 누구는 몸가짐이 태산처럼 듬직하지만 누구는 여름 날씨처럼 요동친다. 도중 탈락자가 생긴다. 낙오하면 성불은 멀어진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는 그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가사를 걸치는 호사를 누렸음에도 깨달음은커녕 선방에서조차 물러났으니 죽어서 다시 사람 몸 받기는 틀린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수행 방법이 달라 아직도 용맹정진하는 곳이 있다. 마지막 일주일 동안은 잠을 자지 않는다. 잠이란 잔인하다. 수마(睡魔)는 땀구멍으로도 쳐들어온다. 머리카락이 천근이고 뼈마디가 저려온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눈꺼풀이다. 죽을힘을 다해도 눈꺼풀은 내려온다. 선방 문을 박차고 나가보지만 잠은 세상 끝까지 따라온다. 눈밭을 뒹굴고 나무에 머리를 찧기도 한다. 한숨만 자고 싶지만 누우면 그걸로 끝이다. 누가 봐서가 아니다. 자신이 알고 있다. 그래서 선승끼리는 서로의 경계를 알아본다. 스님의 법력은 선방에서 결정된다. 몇 수레의 책을 읽은 사람도, 산을 허물 정도로 힘센 장사도 아무 소용이 없다. 참선 잘함이 으뜸이다.  

수행을 제대로 하려면 몸이 받쳐줘야 한다. 병에 걸린 사람은 자진해서 선방을 나간다. 화두가 전부인 선승에게 병이 들면 기댈 곳이 없다. 병든 선승을 위한 자비는 없다. 자비문중의 무자비이다. 1970년대 오대산 상원사에서 동안거를 했던 지허 스님은 <선방일기>를 남기고 홀연 사라졌다. 책은 애틋하고 슬프다. 지허 스님과 함께 수행 중이던 도반이 병에 걸렸다. 침에 피가 섞였음을 확인한 병든 스님은 바랑을 꾸렸다.  

“눈 속에 트인 외가닥 길을 따라 콜록거리며 떠나갔다. 그 길은 마치 세월 같은 길이어서 다시 돌아옴이 없는 길 같기도 하고 명부(冥府)의 길로 통하는 길 같기도 하다. (……) 건강한 선객은 부처님처럼 위대해 보이나 병든 선객은 대처승보다 더 추해진다. 화두는 멀리 보내고 비루와 비열의 옷을 입고 약을 찾아 헤맨다. 그는 이미 선객이 아니고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인간폐물이 되고 만다.”(선방일기)

선방을 떠나야 하는 선승은 얼마나 비참한가. 길을 걷다 죽은 승려도 많았을 게다. 정과 인연을 끊으라고 이르지만 더러는 살기 위해 인연의 땅을 찾아 헤맬 것이다. 연고가 없으면 어딘가에서 승복을 벗어야 했을 것이다.    

마침내 용문선원 선방 문이 열렸다. 선승 14명이 마지막 점심공양을 했다. 눈은 계속 내렸다. 모두 눈에 갇혀 있었다. 그때 한 스님이 바랑을 지고 눈길을 허겁지겁 내려갔다. 뒷모습이 기운찼다. 선방이라는 감옥을 벗어나는 해방감의 몸짓인지, 깨달음을 얻어 ‘한 소식’을 알리려는 환희심의 몸짓인지….  

안거의 선방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으로 한국불교가 맑아지길 바랐다. 세상에 먼지를 일으키는 수많은 권승들은 제대로 안거를 나지 않았을 것이다. 깨닫지 못했으니 중생을 괴롭히는 것 아닌가.

그날 밤 거짓말처럼 눈이 그치고 대보름달이 떠올랐다. 선승들의 깨침이 달빛으로 누리에 퍼질 것이다. 저 달은 수천개의 강에 비칠 것이다.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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