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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의 ‘집단휴원’을 선언했던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결국 무릎을 꿇었다. 한유총은 4일 오후 “개학연기 사태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개학연기 투쟁’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한유총 지도부의 강행 방침에도 불구하고 이날 개학연기에 참여한 유치원이 극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교육부 집계 결과 실제 개학을 미룬 유치원은 전국 사립유치원 3875곳의 6.2%인 239곳에 불과했다. 더구나 이들 유치원도 90% 이상이 자체 돌봄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돌봄 대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독단과 아집으로 벼랑 끝 전술을 택한 한유총 지도부가 소속 회원들로부터 불신임당한 형국이다. 자업자득, 사필귀정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3월5일 (출처:경향신문DB)

한유총의 개학연기 투쟁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과거 한유총은 ‘집단휴원’이라는 전가의 보도로 정부를 압박해 요구사항을 쟁취해왔다. 정부는 그때마다 보육대란을 우려해 타협책을 제시하며 갈등을 봉합했다. 하지만 상당수 사립유치원의 회계비리가 드러나며 상황이 달라졌다. 이번에는 사태 초기부터 정부가 ‘무관용’을 선언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한유총의 행태를 ‘공익을 해하는 행위’로 판단하고 법인 설립허가 취소를 결정했다. 교육부는 한유총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는 한편 시정명령에 따르지 않는 개별 유치원들도 형사고발하기로 했다. 여기에 시민의 80% 이상이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등 한유총의 집단이기주의에 등을 돌렸다. 학부모들이 집회를 열고 손해배상 소송인단을 모집하는 등 ‘직접행동’에 나선 점도 한유총의 백기투항에 영향을 미쳤다. 시민과 정부의 단호한 대응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은 것이다.

개학연기로 인한 혼란이 하루 만에 마무리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한유총이 개학연기를 철회하면서도 “유치원 3법과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그대로 수용하면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밝힌 걸 보면 불씨는 남았다고 봐야 한다. 정부는 사립유치원들이 다시 문을 여는 데 안도하지 말고, 유아교육의 새로운 틀을 짜는 작업에 진력해야 한다. 민간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유아교육 현실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한, 학습권 침해 사태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오랜만에 정상화된 국회도 유치원 3법부터 조속히 통과시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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