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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개의 핥는 행동은 애정과 관계의 확인이며 즐거움이다. 그러나 개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그 행동은 끔찍함이며 두려움이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 먹든 상관없이 늘 좋은 것이 아니다. 동일한 행위도 어떤 상황과 맥락에서 이루어지는지, 누구와 또는 누구에게 했는지에 따라 그 행위는 매우 다른 의미로 구성되고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상식적 범주의 인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해 11월 있었던 해군 상관의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고등군사법원의 항소심 판단이 바로 그런 경우다.  

2018년 ‘#미투’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직장 내 성폭력’이다. 2018년 11월 발표된 ‘전문직 여성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에서도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여성들조차 2명 중 1명은 직장 안에서 성폭력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성폭력의 절반은 피해자가 입사한 지 1년 미만일 때 일어나고, 가해자의 70~80%는 임원, 부서장 등 상급자이며 유부남인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성폭력을 판단할 때 우리 사회는 폭행·협박이 있었는지, 피해자가 어떻게 했는지만을 따진다. 직장 내 성폭력에는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직장 내에서 상급자는 존재 자체로 압력이다. 상급자의 역할과 권한, 직장 전체의 조직문화, 자신의 비전과 이탈 시 생존 가능성 등 매우 복잡한 지형 속에 상급자가 위치하기 때문에 아무리 간 큰 부하라도 상급자의 불법부당한 지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거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상급자는 자신의 무게와 힘을 고려해서 ‘하지 않아야 할 일들’의 목록을 만들어야 하고 사회적으로도 이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목록의 첫 번째는 하급자를 성적 대상으로 삼거나 성적 요구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상급자의 책무에 대해 먼저 질문하고 확인해야 한다. 상급자로서, 유부남으로서 하지 않아야 할 행동을 회피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그럼에도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부득이한 사정은 무엇인지, 어떻게 책임을 지려고 했는지 답해야 한다. 법원은 사건이 놓인 객관적인 사실과 상황, 맥락을 고려함은 물론 피고인의 의도와 책무에 대해서도 면밀히 판단해야 한다. 단순히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했다면 그것은 명백한 성폭력이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남용하면 안된다는 것과 남용할 때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 분명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 이제 해군 상관의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을 담당한 대법원이 그 역할을 할 때다. 대법원은 남성 중심적 성문화와 인식에 근거한, 피해자다움이라는 편견으로 사법부의 책무를 방기한 고등군사법원의 잘못을 바로잡고 상식을 다시 상식의 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피해자는 성폭력 발생 이후 함정의 최고책임자인 함장에게 피해 사실을 보고했고 이후로도 새로운 부임지에 갈 때마다 피해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누구도 상급자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 보고 초기에 가해자를 분명하게 처벌했더라면 겪지 않았을 고통을 피해자는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까지 혼자 감당해야 했다. 이는 전적으로 해군과 국방부의 책임이다. 이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질 것을 촉구한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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