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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홍대’에 살았다. ‘홍대’란 홍익대학교 일대의 서교동을 지칭하는 말이다. 1990년대 후반 ‘홍대’를 떠났다가 지난해 봄 20여 년 만에 다시 이사 왔다. 그동안 ‘홍대’는 크게 확장됐다. 이제 ‘홍대’는 서교동을 넘어 상수동, 합정동, 연남동, 망원동까지를 포괄하는 지명으로 쓰이고 있다. ‘홍대’의 도시 경관과 문화 양식 또한 적잖이 바뀌어져 있었다.
‘홍대’의 변화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도시사회학 개념이 ‘젠트리피케이션’이다. 널리 알려졌듯, 이 용어를 주조한 이는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다. 글래스는 1960년대 초반 런던 노동계급 거주지역에 새로운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중간계급이 들어오고 정작 노동계급은 쫓겨나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 불렀다. 신사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가 새로운 주민이 된다는 의미가 젠트리피케이션 개념에 담겨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이론화한 이들은 영국의 닐 스미스와 데이비드 레이다. 두 지리학자가 겨냥한 초점은 사뭇 다르다. 스미스는 1970년대에 도심의 슬럼을 재개발해 높은 임대 수익을 얻으려는 자본의 적극적 투자가 젠트리피케이션을 낳았다고 분석한 반면, 레이는 전후 부상한 신중간계급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누리기 위해 도심으로 진출한 게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젠트리피케이션 개념에는 자본의 투자 전략과 새로운 문화·소비 공간의 등장이라는 이중적 특성이 공존해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우리말 ‘둥지 내몰림’으로 번역한 곳은 국립국어원이다. 구체적으로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전문적 학술 개념인 젠트리피케이션이 대중적 시사 용어로 부상한 것은 임대료 상승과 그에 따른 원주민 및 자영업자의 이주가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홍대’는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을 겪어온 상징적인 장소다.
주목할 것은 서구적 젠트리피케이션과 한국적 젠트리피케이션 사이에 관찰할 수 있는 차이다. 사회학자 이기웅은 한국적 젠트리피케이션의 특징으로 세 가지를 꼽은 바 있다. 이 가운데 내 시선을 끈 것은 두 가지다. 서구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이뤄진 도심이 원래 게토화된 지역이었던 반면 우리나라 도심은 그렇지 않았다는 게 하나라면,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 젠트리피케이션이 주거 공간보다는 상업 공간에서 진행돼 왔다는 게 다른 하나다. ‘홍대’뿐 아니라 ‘가로수길’ ‘경리단길’ ‘북촌’ ‘서촌’ ‘해방촌’ ‘성수동’ 등의 핫플레이스들은 이러한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
이쯤해서 독자들은 내가 왜 젠트리피케이션을 꺼냈는지를 눈치챘을 듯하다. 오는 6월13일에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지방선거의 일차적 의제는 지역정치와 생활정치다. 서울시, 부산시를 포함한 지방정부들엔 젠트리피케이션이 주요 의제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난 3월 국토교통부는 전국 250곳에서 도시재생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적극적 대응도 그 추진 전략 안에 포함돼 있다.
문제의 핵심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세입자와 임차인들의 생존에 큰 위협을 안겨준다는 점이다. 따라서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져오는 부정적 결과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히 요구된다. 예를 들어, 임대차계약 갱신청구권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내용이 담긴 상가건물임대차계약법을 빨리 제도화해야 한다. 나아가, 지방정부는 물론 중앙정부는 지역 상생이라는 생태계 조성을 위한 다각적 노력들을 기울여야 한다. 도시의 주인은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이대로 놓아두면 ‘뜨는 동네’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들어온다. 그 결과 핫플레이스를 일궈온 이들이 떠나면서 그 장소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분위기가 사라지는 이른바 ‘문화 백화 현상’이 일어난다. 문화 백화 현상은 해당 지역의 개성 있는 얼굴을 지우고 결국 활력을 소멸시킨다.
20년 만에 ‘홍대’로 돌아와 보니 옛날에 소소한 기쁨을 안겨주던 장소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라면을 잘 끓이던 분식집, 제육볶음이 맛있던 백반집, 너바나 노래들을 즐겨 틀어주던 레코드점, 그리고 떡집, 제과점, 세탁소, 정육점, 철물점 등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동물원이 부른 ‘혜화동’의 한 구절처럼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을 달려오는 다정한 친구’와 같던 장소들은 이제 희미해져가는 기억 속 풍경일 따름이었다. 인간의 얼굴을 한 도시 풍경을 소망하는 이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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