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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노동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뉴스에도 잘 안 나온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싸우는 이들이 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 ‘최저임금 인상’을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는 처참하게도 다른 이들의 가슴에 닿지 못한다. 노동자들의 대규모 집회를 알리는 뉴스에 누군가는 교통체증이 먼저 떠오르고, 누군가는 ‘귀족노조’ 운운하며 쥐어박는 소리를 할 뿐이다.

그러나 외면하고 싶은 이 문제들은 잠시만 헤아려봐도 우리네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출근길에 들리는 커피숍이나 만원에 4개짜리 맥주를 사러 드나드는 편의점의 알바생, 택배를 챙겨주는 경비원, 귀갓길을 동행한 대리기사…. 우리는 이들이 나와 내 가족, 내 아이의 현실이며 미래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접어둔 채, 그들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간다. 때론 그들을 향해 냉담함과 오만함을 내보이면서 말이다.

사회가 잘못을 알아채는 것은 대부분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난 다음이다.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외주업체 비정규직 19살 김군의 죽음이 그랬다. 생일을 하루 앞두고 숨진 김군 가방에서는 밥 먹을 시간조차 없어 급히 끼니를 때우려 했을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그제야 세상은 김군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받아들였고, 서울시는 서울교통공사 소속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자 청년 정규직들이 집단 반발했다. 정규직 전환에 ‘합리적 차이’를 두기로 하면서 지난달에야 노사가 극적으로 합의했지만. 이 과정에서 무기계약직 한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반발은 서울교통공사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에도 정규직 교사들과 임용시험 준비생들이 거세게 반발했고, 인천공항공사에서도 정규직 노동자들이 불공정한 입사를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와중에 서울교통공사의 직원 친·인척 ‘고용 특혜’ 의혹이 터져 나왔다. 취업절벽 시대에 채용비리 문제는 일자리 ‘도둑질’로 받아들여져 국민 공분을 일으킬 사안이다. 분명한 것은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사회에 만연한 반칙과 특권을 상징하는 반사회적 범죄로 뿌리뽑아야 하지만, ‘비정규직 정규직화’ 자체를 문제 삼아선 안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교통공사의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게 공정하고 정의로운가를 청년들은 다시 묻는다.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경쟁은 공정해야 하고 약자는 보호돼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주된 근거에는 입사 시험이 있다. ‘바늘구멍’을 뚫고 입사한 자신들과 달리 시험도 안 보고 정규직이 되는 것에 분노가 치밀 법도 하다. 비정규직은 어떤가. 그들은 이 사회가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보다 출발선을 기준으로 영원히 맞닿지 않을 평행선을 그리게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일부 정규직들의 주장대로 비정규직을 그대로 두고 차별만 없앨 수 있을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활동가는 “비정규직 문제는 고용불안에서 출발한다. 비정규직과 차별은 사실상 같은 말이다”라고 했다. 이는 고용불안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가 공정한가에 대한 물음이라는 것이다.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고 노동의 비애를 얘기한다. 밥벌이를 위해 낚싯바늘을 삼킨 비정규직·정규직 노동자들 모두가 원하는 것은 안정된 일자리다. 그렇다면 나 역시 이들과 다르지 않은 노동자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차별을 없애고, 사회 양극화를 줄일 수 있는 출발점이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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