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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진전으로 청와대의 대외 행보에 자신감이 붙었다. 남북관계 개선이 외교적으로 얼마나 큰 지렛대를 가져다주는지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감이 지나쳤는지, 최근 밖으로 드러나는 청와대의 언행에는 외교적 고려가 없다.

유럽 순방 기간 문재인 대통령은 프랑스·영국 등을 상대로 대북 제재 완화 필요성을 공론화했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추동하기 위해 제재 완화를 논의해야 할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이제 북핵 문제는 제재 완화와 같은 행동적 조치가 없이는 더 나가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제재 완화 문제를 놓고 북한과 물밑에서 치열하게 협상을 벌이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유럽의 동맹국들을 상대로 제재 완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한국의 시도를 미국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것은 문제다.

영국·프랑스 등은 중동 문제를 포함해 다양한 측면에서 미국과 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미국이 반대하는 대북 제재 완화를 공개 지지하기 어렵다. 외교적 노력은 유럽이 아니라 제재 완화에 가장 부정적인 미국을 ‘조용히’ 설득하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면 다른 나라들은 따라오게 된다. 유럽에서 제재 완화를 공론화하고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미국을 외곽에서 압박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외교 무감각증 노출은 처음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뉴욕 방문 때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도, 심지어는 남북통일 이후에도 동북아 안정과 평화를 위해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이처럼 공개적으로 중국을 긴장시키는 발언을 하면서 중국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협조하기를 기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북핵 문제의 또 다른 관련국인 일본과는 거의 외교가 중단된 상태다.

이럴 때일수록 미국은 물론 중국·일본 등 주변국과의 정밀한 외교가 필요하다. 남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통일로 다가가기 시작하는 과정을 주변국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세밀하게 주시하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지금 청와대는 그런 ‘외교적 감수성’이 없어 보인다.

<유신모 |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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