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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다. “올해 사업이 잘되었다지?” “건강이 더 좋아졌다면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축하하는 덕담을 건네기도 한다. 말하는 데에 돈 드는 것 아니니 부담 없이 하게 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더욱 간편하게 전할 수 있다. 주는 것 없이 받으라 하고, 받은 것 없어도 기분 좋은 것이 덕담이다.

사실 복은 사람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축복(祝福)과 신(神)의 한자에 제단(祭壇)의 모양을 본뜬 기(示)가 공통으로 들어간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복은 본디 초자연적 존재와 연관된다. 한 해 내내 반복되어 온 일상의 고리를 잠시나마 끊고, 새해에는 사람의 의지만으로 잘 안되던 일들까지 술술 풀리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건네는 말이 덕담이다. 그러기에 내가 주지 못하면서도 상대가 받기를 바랄 수 있고, 이미 받은 것처럼 선언할 수도 있는 것이다.

덕담은 예로부터 민간에 이어져온 풍속이지만, 사대부의 글에서 그 예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설날 지은 시는 나이 듦을 한탄하거나 도소주 즐기는 풍류를 그린 작품이 대부분이다. 남에게 주는 설날 서신에는 덕담보다 권면이 주로 담겨 있다. <진서(晉書)>에 의하면 설날 아침 대궐 뜨락에 백수준(白獸樽)이라는 술동이를 두고 왕에게 바른말을 올리는 신하에게 술을 내리는 오랜 전통도 있었다. 새로워지는 해에 맞추어 자신을 새롭게 할 길을 권하고 찾은 것이다.

기분 좋은 덕담을 엄숙한 권면으로 바꾸자는 것은 아니다. 비방과 악담이 가득한 세상에 축복의 덕담 한마디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다만 남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덕담을 건넸으면 한다. 덕담인 만큼 현실의 조건에 너무 매이지는 말되, 두루뭉술한 복보다는 구체적인 바람을 담았으면 좋겠다. 맹자는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이룰 수 있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고 했다. 복은 사람이 지을 수 없는 것이지만, 두드리고 구하지 않는 이에게는 하늘의 도움도 없다. 설 연휴도 끝나버리고 연말연시를 말할 여유조차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 이때, 각자 나름의 희망을 담은 덕담을 자신에게 조용히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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