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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질병이 보건을 넘어 인권, 정치, 경제의 영역까지 침투하면서, 개인의 두려움은 집단적인 미움과 절망으로 이어진다. 바이러스의 은밀한 공격이 연일 생중계되고, 거기에 더해지는 온갖 말들이 범람한다. 어디서부터 무엇 때문에 잘못된 것일까.

이 상황의 원인은 특정 국가도, 종교도, 정권도 아닌 바이러스다. 우리의 의학 수준에서 최선을 다해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 외에 해결책이 있을 리 없다. 더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전문적 협의는 지속해야 하겠지만, 그 길의 어디에도 배제와 비난이 필요한 대목은 없다. 은폐를 전략으로 포교하는 종교집단이 확산의 온상이 된 것은 슬픈 현실이다. 그러나 이들도 병세를 밝히고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확진자 증가에 연연하지 말고 감염자가 모습을 드러내도록 해야 할 때다. 지금 포용과 돌봄은 휴머니티일 뿐 아니라 가장 효율적 대책이다.

통천서(通天犀)는 무소뿔의 일종으로 특이한 광채가 나서 고관의 허리띠를 장식하던 보배인데, 송나라 인종 덕분에 더 유명해졌다. 당시 역병이 창궐하자 인종이 무소뿔 두 개를 내주며 갈아서 약재에 보태게 했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통천서였다. 이를 본 내시가 아껴두길 청하니 인종이 그 자리에서 부숴버리면서 말했다. “내가 어찌 진기한 물건을 귀하게 여기고 백성을 천하게 여기겠는가?” 역병이 돌 때 국가가 나서 구제해야 함을 역설할 때 인용되곤 하는 고사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어려운 시기를 감내할 힘을 주는 말이지만, 문제는 지나간 다음이다. 그 뒤에도 당연히 이어질 삶. 그것이 없을 것처럼 배제와 비난의 언어로 목소리를 높인다면 그야말로 비참한 일이다. 피해를 입은 약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일로부터 방역과 재난 대응 시스템을 평가하고 정비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통천서를 부숴버리는 심정으로 사회적 비용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금 목소리 높이는 이들은 정작 이 상황이 수그러들면 경제 논리를 내세우며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 분명하다. 소 잃은 뒤에 외양간 고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는 그때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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