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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된 <나혜석, 한국 문화사를 거닐다>는 나혜석을 매개로 15년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접근한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수록된 글 22편의 면면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 나혜석이란 누구, 아니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솟구친다.

내가 나혜석이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 서양 최초의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를 번역책으로 한국에 소개하면서이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17세기 초 이탈리아 로마 태생으로 당시 카라바조 화파의 일원인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딸이다. 딸은 아버지로부터 감식안과 솜씨를 익혔고, ‘젠틸레스키’라는 이름을 놓고 대결하는 경쟁자로 성장했다. 예술을 건 불멸의 싸움에서 성패는 서명에 있다. 캔버스에 이름을 남기는 것.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이나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에 걸리는 것. 그리하여 후세에 영원히 전해지는 것.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최초의 여성 화가’로 등록된 것은 이전 시대 여성들이 아버지와 남편의 그늘에 가려 존재감이 사라진 반면, 자기가 그린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는 것을 뜻한다. 그녀가 화폭에 서명을 남긴 것은 목숨을 걸고 얻어낸 고귀한 결과이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서양 최초의 여성 화가라면,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다. 수원 출신인 그녀는 1910년대 도쿄로 미술 유학을 떠났고, 서울에서 최초로 서양화 전시회를 열었다. 1920년대에는 세계 예술의 수도로 통했던 파리에 체류하며 ‘스페인 국경’ ‘파리 풍경’ 등을 그렸고, 귀국 후엔 ‘무희’ ‘자화상’ 등 문제작을 제작했다. 나혜석과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공통점은 예술사에 자신의 이름을 처음 등재시킨 여성이라는 점과 그 과정에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나혜석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소설과 시, 칼럼, 평론 등 글쓰기를 동시에 수행했다.

한마디로 그녀는 21세기 인간 유형인 멀티플레이어였다. 같은 여성 작가로서, 그녀가 세 아이를 낳은 어머니였고, 아이의 이름에 부계와 모계의 성씨를 명기한 남녀 평등주의자였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에 나혜석의 선구적인 의식과 영역이 역동적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작가란 시대의 부침과 세월의 풍화 작용을 거슬러 예리하고 단단한 빛을 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혜석의 태생지 수원의 행궁 옆에 최근 수원시립미술관(SIMA)이 문을 열었다. 그동안 지면으로만 보아왔던 ‘자화상’ 원작이 개관 기념작으로 80여년 만에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글로 쓰든 그림으로 그리든, ‘자화상’이란 자신의 얼굴(표정)을 타인의 눈으로 예리하게 관찰하여 기록하는 형식이다.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를 되돌아보기 위해, 그리하여 내일의 나를 조금은 새롭게 열어가기 위해 ‘자화상’과의 만남이 절실한 시점이다. 십이월, 마지막 해가 저물기 전에 옷깃을 여미고 수원행 열차를 타야겠다.


함정임 | 소설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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