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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우는 사람들의 노동에 대해 써보자고 아이들에게 제안했다. 엄마나 아빠가 집 밖에서 그리고 집 안에서 하는 일들을 새삼 곱씹기 위한 글감이다. 한 아이가 노동이 뭐냐고 묻는다. 나는 노동이 무엇인지 대답한다. 모든 노동에는 고달픈 점이 있다고도 덧붙인다. 그러자 또 다른 아이가 고달픈 게 뭐냐고 묻는다. 이번에 나는 아이들 전체에게 되묻는다. “그러게. 고달프다는 건 뭘까?” 아이들은 질문한 아이에게 자신이 아는 고달픔의 속성에 관해 앞다투어 말해준다. “힘들다는 얘기야.” “뭔가 막 피곤하고 서러운 거야.” “한마디로 지친다는 거야.” 소규모 집단지성으로 서로의 호기심이 해결된다. 오늘은 나를 위해 기꺼이 고달픈 사람들을 떠올리며 글을 써보기로 한다. 매일 봐서 다 안다고 생각했던 부모의 모습을 눈 씻고 다시 보는 것이다.

그러자 아홉 살 서영이는 이렇게 썼다. “우리 엄마, 아빠는 덴털 마스크를 판다. 무지무지 바쁘다. 매일 출근한다. 심지어 주말에도 출근한다. ‘바쁘다, 바빠!’라고 말하며 계단을 빨리 내려간다. 출근하면 마스크를 포장하고 컴퓨터로 일도 한다. … 저녁에 퇴근할 때도 있고 밤늦게 퇴근할 때도 있다. 행복한 얼굴로 돌아온다. ‘서영아~ 잘 있었어? 보고 싶었어’라고 말하며 나를 안아준다.”

서영이의 글에서 엄마와 아빠는 계단에서도 서두를 만큼 분주하다. 덴털 마스크의 제조 방식과 유통 과정은 몰라도 부모가 출퇴근하는 모습만큼은 서영이의 두 눈에 선명하게 담겨 있다. 돌아오면 어김없이 자신을 안아주는, 매일 보는데도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엄마의 표정과 목소리를 기억한다. 열한 살 지율이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습관처럼 내뱉는 말들을 이렇게 옮겨 적는다.

“아빠는 가방을 들고 ‘다녀오겠습니다. 얘들아 안녕!’ 하며 출근을 한다. 엄마는 자동차 키를 들고 ‘엄마 갔다 올게! 사랑해!’ 하며 우리에게 뽀뽀를 하고 안아주며 출근한다.”

서영이와 지율이의 글에서 부모들은 현관문에 서 있다. 그곳은 수없이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장소다. 맞이와 배웅, 염려와 안도가 반복되는 장소라 어떤 말들은 아무리 되풀이해도 모자라다. 다녀올게. 잘 다녀와. 다녀왔어. 어서 와. 보고 싶었어…. 글쓰기 수업에서 아이들은 이 평범한 대사들을 귀하게 여기며 원고지로 데려온다. 또한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생각해본다. 아홉 살 이안이는 이렇게 쓴다.

“우리 엄마는 디자인에 대해 회의를 하러 출근을 한다. 그리고 지친 표정으로 돌아온다. 아빠는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그림 그리는 일을 한다. 참 힘들어 보인다. 나는 엄마와 아빠의 직업을 가지고 싶지 않다. 그 직업들은 맨날 컴퓨터 앞에만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안이는 지친 표정으로 돌아오는 엄마의 앞모습과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아빠의 뒷모습을 문장으로 옮긴다. 컴퓨터 작업에 시달리는 일에 관해서라면 아홉 살 제하도 회의적인 문장을 쓴다. “우리 엄마 아빠는 그동안 책을 만들어서 나를 먹여살렸다. 왜 책 만드는 직업을 선택했는지 모르겠다.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 항상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쳐야 한다.” 이안이와 제하는 자신들이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날마다 하는 이들의 모습을 새삼 생각하며 짧은 글을 완성한다. 그리고 나에게 원고지를 제출하면서 곧바로 묻는다. “선생님, 밖에 나가서 놀아도 돼요?”

내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들은 마당으로 뛰쳐나간다. 서로를 쫓아가며 웃고 떠들고 뛴다. 엄마나 아빠는 안중에 없어지고 순식간에 새로운 일로 즐거워진다. 동시에 내 책상에는 아이들이 타인을 생각하며 쓴 삐뚤빼뚤한 글자들이 쌓여 있다. 잠시나마 나의 고달픔 말고 다른 이의 고달픔으로 시선을 옮겼던 흔적이다. 나는 그 흔적이 자아의 이동 혹은 자아의 해방임을 안다. 시선을 이동하며 나에게서 해방되는 축복을 계속해서 가르치고 싶다고 소망한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 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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