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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장혜영의 정치

opinionX 2020. 7. 21. 10:22

장면 하나. 정의당 혁신 방안을 논의하는 혁신위원회가 구성되자 당 안팎에서 많은 말들이 쏟아졌다. 건강한 제언부터 우려와 회의의 목소리까지. 이때 장혜영 혁신위원장이 한 가지 제안을 던진다. 의견들을 올릴 때 해시태그를 달아달라는 것. 그러면 일일이 찾아서 꼼꼼히 살펴보겠다고 했다. 이 간단한 제안 하나로 정의당원들의 목소리는 구심점을 얻게 됐다.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의례적인 말이 실질적인 말로 변화한 순간이다.

장면 둘. 장혜영 국회의원이 주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안 발의를 앞두고 반대세력의 항의가 빗발쳤다. 장 의원은 이 소식을 알리면서 지지자와 당원들에게 이런 요청을 한다. “잘하고 있다고, 같이 돌파하자고, 그런 말들이 필요하다.” 반대세력에 맞서 싸워달라고 하지 않았고,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단지 ‘같이 돌파하자’고 했다. 차별금지법 지지자들이 울타리 너머 응원자에서 장 의원 옆 동반자로 위치를 옮기는 순간이다.

파편적으로 흩어진 목소리들이 하나의 지향을 공유하는 큰 파도가 될 수 있도록 구심점을 만들어주는 것. 그는 자신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각자의 정치를 펼칠 수 있도록 ‘퍼실리테이팅’하는 정치인이다. 그의 퍼실리테이팅에 따라 당원과 지지자들은 정치라는 장의 울타리 바깥에 머물 틈이 없다. 장 의원은 지지자들이 설 수 있는 새로운 위치를 포착하고 선보였다. 장 의원의 정치는 이 지점에서 새롭다.

최근 정치인의 지지자들이 후원금을 내거나 선거 때 지지를 호소하는 것 말고 어떤 정치적 행위를 펼쳐 왔던가. 정치인의 세몰이를 위해 수동적으로 동원되는 존재였거나, 정치인의 치부를 무조건적으로 방어하고 엄호하는 존재였거나, 정치적 반대세력에게 문자폭탄을 보내며 네거티브한 공격을 담당하는 존재였다. 다시 말해 정치인 본인이 수행하기 곤란한 일들을 대리하는 게 지지자가 수행할 수 있는 정치적 역할인 것처럼 여겨졌다.

반면 장 의원은 지지자들을 자신의 앞이나 뒤가 아니라 옆에서 ‘같이 돌파하는’ 존재로 대하고,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엄호가 아니라 서로 따뜻한 격려를 주고받는 존재로 대한다. 이런 정치의 작동은 단지 정치인의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지지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정치를 소비하는 소비자나 정치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뒤에서 엄호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정치의 주체로서 정치인의 옆자리에 서겠다는 의지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대의민주주의에서 시민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자세일 것이다.

장혜영·류호정 의원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대한 조문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낸 뒤로 정의당에 또다시 탈당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정의당이 더불어민주당과 관련한 논란에서 각을 세울 때마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 유독 정의당에 있어서 ‘탈당 선언’은 정치적 협박처럼 작동해 왔다. 그것이 협박처럼 느껴지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정의당과 같은 군소정당은 거대양당에 비해 국고보조금을 훨씬 적게 받는 탓에 수입 구조에서 당비 의존율이 높다는 점과 집단탈당과 같은 부정적 이슈에 더욱 취약하다는 점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소비자 혹은 투자자의 논리인 셈이다.

그런데 지난 탈당 릴레이 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새로운 현상이 눈에 띈다. ‘입당 운동’이다. 탈당 릴레이가 가시화되며 정의당이 혼란스러워지자, 그간 정의당을 관망하던 사람들이 입당을 선언하고 있다. 들리는 바로는 최근 입당자 중 다수가 20·30대 여성들이라고 한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2차 가해에 동참하거나 적당히 침묵할 때, 앞장서서 피해자의 편에 서기를 선택한 두 의원과 그들의 당을 응원하고 ‘같이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정치인의 앞이나 뒤가 아니라 옆자리에 서겠다는 지지자의 의지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장혜영의 정치는 이렇게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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