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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가 길어집니다. 보일러 기름값이 아까운 노인양반들은 여태 한 평 남짓한 전기장판에 몸을 지지고, 배싹 마른 사람 날아갈 듯 부는 동풍에 아직도 겨울옷을 들여놓지 못합니다. 그래도 마을회관에나 가야 사람구경할 수 있었던 철은 지나고 논밭에도 제법 사람들이 기어 나와 들판은 뭔가 일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주말마다 아홉시 뉴스 첫 자락을 차지하는 것은 상춘객들이지만 놀기 좋은 날은 일하기도 좋은 날이라는 불편한 진실. 논 갈고 볍씨 파종하면서부터 봄 ‘싸가지’, ‘싹수’에 대한 걱정은 몇 십 년 농사를 지어 온 어른들에게도 언제나 365일 한 해 밥 빌어먹는 무게입니다. 저녁 때 갖는 소소한 술자리에서는 한숨 쉬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립니다. “에휴, 날 따땃해진 게 이제 일만 남았네.” “못자리 끝나고 꽃 다 떨어지면 꽃구경 가세!” 해마다 겪지만 과정과 결과의 고단함을 뻔히 아는 한 편의 드라마 속으로 뛰어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엄살일 수도 있겠습니다. 일 잡기 시작하면 깜깜할 때 일어나 ‘시간이 지났는데 해가 왜 안 뜨나’ 하는 것이 걱정이고, 할 일이 날마다 잔뜩 남은 저녁에는 ‘왜 해가 벌써 지나’ 하는 것이 또 새로운 걱정입니다. 새벽 3시에 논에서 꿈틀대는 아저씨를 보고 “나이 먹은 게 잠도 안 오죠?” 하면 “너는 꼭두새벽에 뭣하러 돌아다니냐” 하는 핀잔이 술 한 잔으로 돌아오면서 곧 일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란, 겪지 않은 일에 대한 것, 하지만 상상할 수 있는 것. 예를 들면 나이가 더 들어 삶이 비루해지면, 사랑했던 각시와 헤어지게 되면, 한없이 예쁘기만 한 아이들이 바보같이 자라면, 하는 것에 대한 상상. 친한 아저씨네 집에 바쁘다고 품앗이를 가지 않는다면, 새로 해 놓은 못자리판에 뿌리가 잘 잡지 않는다면, 집 지으려고 모아 놓은 돈으로 온 식구가 세계여행을 떠난다면, 내 삶과 대수롭지 않은 인간관계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 숙면을 방해하는 것, 여름 장마와 가을 수확을 따져 보는 봄, 아직, 오지 않은 것.


포털 화면에서 ‘개성공단 잠정 중단’보다 두 칸 밑에 있는 ‘류현진의 첫승’을 손가락이 먼저 클릭하는 순간, 머리는 ‘이래도 되냐?’고 물었고, 이어 누구에겐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군산 비행장으로 낮게 나는 군용기가 다시 보이기도 했지만, 고위 관계자가 되어서 고급 정보를 가지고 고단수의 외교전, 심리전, 정보전 등을 직접 수행하지 않는 이상 바보상자에서 하는 소리나 되새김하면서 3인조 강도 때문에 패트리엇 미사일을 배치했다는 철 지난 농담이나 지껄일 뿐입니다. 


(경향DB)


배경조차 생소한,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울부짖는 아이들이 텔레비전에 나올 때 애써 감정이입을 하기도 하지만, ‘내가?’ ‘내 아이가?’ 하는 생각은 전혀 비현실적입니다.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비현실적인 전쟁이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30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한국전쟁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를 앞에 두고 3만명 이상이 죽었던 제주도에서 우리 동네 아저씨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조국통일대전’이나 ‘한반도에 들어선 커다란 시장’일 리는 만무합니다. 그때도 오늘 약속한 품앗이를 못 가거나 물꼬를 못 보거나 하는 것이 걱정이겠고, 여전히 농사를 개콧구멍으로 아는 조국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간직한 채 ‘아! 나는, 오늘, 소 밥도 못 주고 죽는구나!’ 하며 양민학살로 기록될 역사의 현장에 있기 십상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왜 그러는 거예요?” 하며 시작하는, 야구 해설보다 결코 재밌거나 유익하다고 할 수 없는 평론가들의 입방아는 넘쳐나는데, 정작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누구도 말하지 않고, 평화를 위한 어떤 움직임에도 주목하지 않습니다. 성숙한 국민의 힘으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해석은 차라리 역겹습니다.


평화의 반대가 전쟁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의 감각은 이미 다 닳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쫓기고, 병원에서 쫓기고, 일터에서 쫓기고, 사람에게 쫓기고, 돈에 쫓기고, 쫓기고 쫓겨 오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평화의 범위는 내 코 앞 석 자를 넘어 휴전선까지 닿기에는 난망한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바람이 불면, 우리 동네 아저씨들은 풀보다도 먼저 잽싸게 눕겠지만, 병자호란 끝에 돌아와 ‘불길이 끊긴 화덕 안쪽의 구멍을 막’고 ‘장독 속의 똥물’을 밭에다 뿌리며 봄농사를 시작하는, 김훈의 <남한산성>에서 오직 의미 있는 ‘서날쇠’처럼 살 것입니다. ‘조정이 비켜줘야 소인들도 살 것이온데….’


방긋 돋는 새순이 어서어서 자라 알곡이 되고 북녘 어린이들의 목구멍으로 따습게 넘어가는 쌀밥이 되기를 바랍니다.



최용혁 | 서천군농민회 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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