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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럴 줄 알았다. 겨울은 호락호락 쉽게 물러가는 법이 없다. 봄날의 훈풍이 당연한 4월 중순의 주말이었건만 뜻밖의 눈이 배달됐다. 


어디 공중에서 오는 날씨만 그럴까. 우리가 매일매일 엮어나가는 날짜 속의 세상도 그렇다. 한두 번 봄이 온 듯하더니 겨울공화국을 방불케 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춘래불사춘이라는 말은 그래서 생겨난 말이기도 하겠다.


매달 지리산의 식물 공부를 하는 모임이 올 2월에는 주중에 있었다. 멤버가 부산과 대구의 교사들이라 방학을 맞이해서 그렇게 일정을 잡은 것이다. 월요일 청학동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자면 일요일 오후에 내려가 근처에서 일박을 해야 한다. 그냥 갔다가 올라오기엔 왠지 아쉬웠다. 두 동무에게 주말을 통영서 보내자고 했다. 나의 수작이 엉큼한 것은 아니었고 남녘 바다에서 봄의 기미를 만끽할 수도 있는 호기회여서 흔쾌히 따라주었다.


남부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순조롭게 달리기 시작했다. 며칠 전 매서운 추위가 다녀간 터라 상대적으로 훈훈한 날씨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봄 느낌이 더욱 더해지는 것 같았다.


고속버스의 좌석. 그곳을 그냥 목적지에 가기까지 잠시 궁둥이를 맡겨두는 곳이라 하면 그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서 참 묘한 장소이기도 하다. 자동차 바퀴처럼 팽팽 돌아가는 바쁜 도시생활에서 그곳은 문득 정지한 공간이다. 화장실 말고 이처럼 오래 혼자 되는 자유, 홀로됨의 여유를 누리는 곳도 드물다.


일인석에서 안전벨트에 묶여 있는 동안 창밖으로 흰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듯 많은 생각이 일어났다. 지나가는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흔들리는 버스를 따라 몸도 따라 흔들리는데 딸아이가 챙겨준 이어폰 생각이 났다.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지만 그저 전화나 카카오톡을 이용하고 페이스북이나 기웃거리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며칠 전부터 유튜브에서 음악을 골라 듣다가 제법 재미를 느낀 바가 있었다. 비슷하게 연속되는 풍경에서 조금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이 닫힌 공간에서 할 수 있는 동작이 별달리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 이어폰과 유튜브와 클래식이 떠오른 것이다.


클래식에 관한 일천한 지식으로 제목을 댈 수 있는 건 손에 꼽을 정도이다. 통영까지는 앞으로 두세 시간. 연주가 제법 긴 곡목을 찾아야 했다.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를 떠올리다가 작곡가가 아니라 퍼뜩 떨어지는 곡명이 하나 있었다. 바깥 풍경과도 딱 어울리는 노래였다.


이래저래 여러 번 들어본 바가 있기에 그 앞 대목은 흥얼거릴 수가 있다. 물론 내가 먼저 하는 게 아니라 반 박자 늦게 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독일의 유명한 가곡으로 제목만 대충 알았던 노래. 그것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였다. 유튜브에서 검색하니 <보리수> <여인숙> <거리의 악사> 등 3곡의 가사가 번역되어 흐르고 있었다. 오늘의 내가 피끓는 청춘이었더라면, 그리하여 공교롭게도 실연의 상처를 달래느라 떠나는 시무룩한 여행길이었다면 <보리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날 날카롭게 꽂히는 건 <여인숙>이었다.


“길을 따라 걷다보니 한 묘지에 이르렀네/ 바로 여기에서 묵어가리라 그렇게 생각했다네/ 푸르른 장례조화들이 간판이 되어주어/ 지친 방랑자를 서늘한 여인숙으로 안내하네/ 그런데 도대체 이 집에 빈방이 하나도 없다니?/ 나 쓰러질 정도로 지치고 심한 상처를 입었다네/ 오 무정한 주인이여 나를 내쫓는 것인가?/ 그렇다면 더 멀리, 더 멀리 가자꾸나 나의 충실한 지팡이여.”


이럴 수가. 가사를 알고 감상하는 <겨울 나그네>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었다. 대강 알고 말았더라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어떤 이는 고등학생 때 이 노래를 듣고 음악의 길에 투신했다고도 했다. 이제 인생의 오후로 접어드는 한 중늙은이에게 그런 열정을 기대할 수는 없다. 다만 앞으로 나의 여인숙까지 가는 동안 지팡이로 삼기에는 아주 흡족한 노래라 아니 할 수 없었다.


지금 나는 통영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는 겨울 나그네. 그 신세를 알아차리는 듯 차창 밖으로 여인숙이 계속 나타났다. 오래된 곳도 있었지만 신장개업한 여인숙도 더러 있었다. 묵은 가지마다 희끗한 잔설이 간판처럼 달려 있었다. 머지않아 할미꽃, 솜나물, 산자고, 양지꽃 등이 등(燈)처럼 숙소 주위를 밝힐 것이다. 살아서는 문패도 없던 이들이 저 허름한 곳에 투숙하고서야 비로소 이름을 내걸고 편안히 잠들었구나.


경남 통영의 동피랑 골목 (경향DB)


대전을 지나 대진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이윽고 버스는 무주 근처 덕유산 자락을 통과하고 있었다. 저 너머 너머에 두고 온 내 고향이 있다. 오늘 하룻밤이야 통영에 어디 빈방 하나 없을까. 하지만 평생을 떠도는 이 지친 방랑자를 받아줄 최후의 여인숙은 저 어딘가에 서늘하게 있어 언제든 어서 오라, 기다리고 있을 듯!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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