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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는 별칭이 많다. 꽃과 신록이 천지간에 난만하니 계절의 여왕이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줄줄이 이어지는 가정의 달이요,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의 도전과 응전이 맞부딪힌 항쟁의 달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깥세상과 상관없이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5월은 엘리엇의 4월 못지않게 ‘잔인한 달’이다.


이십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그때 내 주변의 친구들은 잔뜩 화가 나 있었고 얼마간 풀죽어 있었다. 3월과 4월의 모의고사와 중간고사 성적에, 꿈과 현실의 간극에, ‘3당 4락’이니 ‘4당 5락’이니 하는 소리로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불편한 수면에, 강제 학습에 다름 아닌 자율 학습에, 독서실의 탁한 공기에, 매일 아침 시험일 디데이를 새로 고치는 주번에, 고3 수험생을 둔 집안답게 눈치를 보며 발끝으로 걷는 가족들에, 우리만 빼놓고 띵까띵까 신난 듯만 보이는 세상에.


학기 초의 결심과 각오는 흐지부지해진다. 피로는 쌓이고 긴장과 초조함까지도 익숙해진다. 아무리 협박을 하고 으름장을 놓고 살살 꼬드겨도 ‘딱 1년만 죽었다’고 생각하며 살기는 어렵다. 삶은 단 한순간도 멈출 수 없을뿐더러 열아홉 스물의 유예된 시간은 새싹을 짓밟아 춘신(春信)을 수신 거부하는 억지나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경향DB)


다시 이십여 년이 지난 후에도 한봄의 살풍경이 사라지기는커녕 도를 더하니, 한국의 아이들은 가장 재미없는 공부를 가장 오래 하는 것으로 세계 제일을 달리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몸의 나이를 따라붙지 못하는 정신의 나이 때문에 여전히 부모보다는 아이들에게 감정 이입이 되는 나로서는, 무능한 어른들이 밉고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 싫고 무력한 아이들이 안쓰러울 뿐이다. 그런 데다 고교 졸업생의 30퍼센트만이 대학에 가던 이십여 년 전보다 80퍼센트가 대학을 가는 지금이 더 나쁜 점은, 대학 진학 이외에 선택할 진로가 협소해진 것과 더불어 과열된 경쟁과 부모의 교육열로부터 벗어날 방도가 없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도망쳐 숨을 데가 없다. 학교에도 집에도 그들의 작은 몸을 감춰줄 곳은 없다. 기껏해야 컴컴한 PC방이 아니라면 비정한 도시의 거리에 헐벗은 채 나서야 한다. 멀쩡한 집에 안락한 공부방에다가 원한다면 독서실도 척척 끊어주는데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항시 충족되지 못한 욕망으로 배고픈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필요한 곳은 집중력이 강화되어 학습 효율이 높아지는 공간이 아니라 고단한 몸과 마음의 쉼터다. 생후 20개월이 지나 공간지각력의 발달과 함께 자기만의 공간을 갈구하는 어린아이들처럼, 방구석에 커튼을 치고 기어들어가 아무도 모르는 세상에서 안전하다고 상상하는 그 두려움의 존재들처럼, 아이들에게는 세상의 시선과 압력을 피할 보금자리가 필요한 것이다.


아들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야산에는 졸업생들이 파놓은 ‘땅굴’이 있다. 이 어수선한 시국에 땅굴이라니, 라면 박스에 곱게 담아 벽장에 넣어둔 반공글짓기 상장의 유령이 기어 나올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 땅굴은 지난해 고3이었던 해수와 종범이가 장장 8개월에 걸쳐 작업한 ‘졸업 작품’이다. 얼마 전 아들아이와 함께 살펴본 땅굴에는 푸른 방수포가 씌워져 있었다. 미완의 작품이라 두 번의 미장 공사를 더 해야 하니 올여름에 마무리 작업을 할 때까지 흉측함을 참아달라는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살짝 방수포를 들춰 보니 사람이 들어간다면 겨우 두어 명, 오모가리 김치찌개 집 김칫독이 들어가면 족할 만한 구덩이가 검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니, 이걸 여덟 달 동안 팠단 말이야? 고3 수험생들이?” 


짐짓 허탈한 내 말에 그 ‘장인’들의 후배인 아들아이가 발끈한다. 


“형들이 이 4017리터를 파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대한민국의 고3 수험생으로서 보약을 먹어가며 숨도 에너지효율성에 따라 쉬어야 마땅할 그들이 땅굴에 들인 노력은 친구들과 후배들이 잘 알고 있었다. 폭염과 폭우, 모의고사와 수능, 폭설과 맹추위를 견디며 삽질을 했다고 한다. 돌이 나오면 굴착기를 들고 비가 오면 우비를 입고 2미터 아래의 지하세계에서 돌과 씨름했단다. 그러는 동안 수십 켤레의 장갑과 세 켤레의 신발과 다섯 개의 망치가 닳아 없어졌고, 고단한 수험생활도 허물어질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파낸 흙더미처럼 사라져갔다.


졸업식 다음날 페이스북에는 ‘안식처’에 조명을 달고 기뻐하는 종범이와 해수의 모습이 사진으로 찍혀 올라왔다. 어쩔 수 없는 ‘어른’의 궁금증으로 졸업 후 그들의 근황을 살피니 종범이는 스포츠과학을, 해수는 건축학을 공부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어느 대학에서 무얼 전공하느냐는 질문 자체가 어리석다. 어디에서 무얼 하든, 그들은 자신만의 땅굴이거나 은신처이거나 안식처이거나 궁전일 그것을 반드시 지어내고 말 터이니.



김별아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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