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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금요일 밤 버스를 탔다. 서울 변두리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밤 10시의 버스 안, 당연히 불타는 금요일 따위의 후끈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자리를 잡았는데, 앞자리에 두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뒷좌석에 있는 나도 술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꽤 많이 마신 듯했다. 그 둘은 친구이다. 그리고 50대 중반이며,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묻지 않았지만 버스 탄 지 5분 만에 그들의 신상에 대해 알고 말았다. 버스에는 승객이 많지 않았다. 소곤거리며 이야기해도 다른 승객의 귀에 들릴 정도로 한적한 버스였는데, 그 두 남자는 술 탓이었는지 본래 그런지 확실하지 않으나 꽤나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 내용이 너무나 생생하게 전달되었기에 뒤통수만을 보고 있는데도 마치 같은 테이블에 앉아 소주를 함께 마시는 느낌이었다.

그들과 내가 모국어로 삼고 있는 언어가 같기에,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단 한마디도 실종되지 않고 귀에 꽂혔다. 모든 말을 알아듣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 내용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그들의 대화를 따라갈 수 없었다. 나와 그 두 남자는 한국이라는 추상 세계는 공유하고 있지만, 서로 교류하지 않는 분리된 일상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 대화의 맥락을 도대체 파악할 수 없었다. 이처럼 직업으로 인해 서로 편입되어 있는 세계가 다르면, 그 다름은 많은 경우 이해의 장벽으로 작용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국이라는 추상 세계는 하나이지만 우리가 각자 속한 일상세계는 서로 다르다. 어떤 경우에는 고용상의 지위가 우리를 서로 다른 세계로 분리되게 한다. 고용하는 입장과 고용된 사람의 처지는 다르다. 사장의 마음을 알바가 알 리 없고, 알바 역시 사장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직업에 따라 때로는 젠더에 따라 그리고 인생의 단계, 즉 연배에 따라 일상은 분리된다. 서로 분리된 세계에 있는 한 우리는 자신에게 낯선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의 속사정을 알지 못한다. 각자의 세계에는 그 세계만의 사정이 있다. 각자의 사정을 가볍게 무시하고, 혹은 사정을 쉽사리 넘겨짚고 심지어 각자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추상적인 세계를 공유한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참견을 쉽게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 때로 전문용어보다 세상의 흐름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세상의 변화를 민첩하게 포착하는 인터넷 용어로 그들을 표현하자면 ‘오지라퍼’라 부를 수 있다.

‘오지라퍼’는 다 안다고 생각한다. ‘오지라퍼’는 주저하지 않는다. ‘오지라퍼’는 신속하다. 그리고 재빠르다. 계층에 따라 세계가 파편화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아니 모른 체하며 “하면 된다”고 설교하기 시작하면, 그 ‘오지라퍼’의 혀가 뱉어내는 단어는 총알처럼 듣는 사람의 가슴을 후벼 파고든다. 가장 흔한 ‘오지라퍼’ 유형은 꼰대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이 ‘오지라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서로 다른 세대 경험을 지닌 작은 세계의 모자이크로 이뤄져 있음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모든 사람은 한때 젊었었다. 노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모든 나이든 사람은 자신의 청춘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지만 젊은 사람은 나이 들었던 적 없다. 나이든 사람은 젊은 시절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지만, 젊은 사람은 나이 들었던 적이 없으니 그들은 나이든 상태를 기억할 수 없고 단지 막연하게 추정만 할 수 있다. 이런 비대칭으로 인해 나이에 따라 분리된 세계가 있음을 알지 못하는 ‘오지라퍼’는 나이든 사람 중에서 유독 빈번하게 출몰하곤 한다. 나이를 먹음이 죄를 짓는 것은 아니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다”를 레퍼토리로 삼는 ‘오지라퍼’가 될 확률이 높아짐은 분명하다. 모든 나이든 사람이 ‘오지라퍼’의 변종 꼰대는 아니지만 넘겨짚기 잘하고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일장연설을 잘 늘어놓는 사람은 귀보다는 입이 발달했다. 입이 발달한 사람은 내가 한때 젊었으니 모든 젊은 사람의 처지를 모를 리 없다는 그 악명 높은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도 스무 살이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나는 지금 스무 살인 사람의 처지를 잘 모른다. 감히 안다고 할 수 없다. 내가 겪었던 1980년대의 스무 살의 젊음과 2019년에 스무 살을 보내는 사람의 젊음이 같을 리 없다. 나는 나의 스무 살만을 기억하고 있고 알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나이든 나를 모르는 것처럼, 나 또한 옛날이 아니라 현재 젊음의 단계에 있는 그들을 모른다. 우리는 서로 모른다. 모르는 사이라면, 우리가 지켜야 할 절대덕목은 함부로 ‘아는 척’하지 말기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늘어놓는 ‘아는 척’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아는 척’을 멈추지 않으면 현재 알지 못하는 사람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결국 놓치고 만다. ‘아는 척’이 지나치면 영혼도 잠식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했던가? 시대에 맞게 그 속담을 살짝 바꾸어 본다면 인간은 나이를 먹을수록 ‘아는 척’하기보단 “나는 모른다”고 다짐해야 한다. 나는 금요일 밤에 버스에서 만났던 그 두 사람을 모른다.

<노명우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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