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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그곳을 철강공단지대라고 불렀다. 서울 청계천에 있던 철공소들이 한강을 넘어 합류하면서 한때 그곳은 온종일 쇳가루가 날리고, 불꽃이 튀고, 기계가 쉬지 않고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철공소 골목에는 드문드문 커피숍이 있고, 술집이 있다. 눈에 띄지 않지만, 구석구석에 예술가들의 작업실도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주노동자의 방송’ MWTV가 있다. 오랫동안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더부살이를 했던 MWTV가 마침내 개국 이래 처음으로 독립 공간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쇠 냄새가 배어있는 골목 어딘가 있을 그곳을 찾아가면서 MWTV 옛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모두 2003년 이주노동자들의 강제추방 중단과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외치면서 장장 381일 동안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던 중 만났다고 했다. 1년이 넘게 텐트에서 함께 먹고 자고 하던 동지들이 의기투합해서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방송국을 차린 것이다. 비록 시민방송 RTV 사무실 한쪽을 얻어 쓰는 처지였지만, 이주노동자들 스스로 자신들의 방송을 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들은 주중에는 일터에 있다가 주말마다 방송국으로 달려와 카메라 앞에 앉았다. 이주노동자 방송은 방글라데시, 네팔, 몽골, 미얀마 등 8개 국어로 방송됐다. 그들의 공용어는 한국말이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이들이 한국말로 회의하는 모습은 생경했다. 

“동대문 봉제 공장에서 오래 일했거든요. 그 공장 사장이 전라도 사투리를 썼어요. 그래서 전라도 사투리를 잘하죠.”

안나푸르나가 보이는 포카라가 고향인 그는 전라도 사투리만 잘한 게 아니라 노래도 잘했다. 그는 스탑크랙다운 밴드의 보컬이었다. 그는 얼마 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MWTV 새 사무실 집들이를 꽉 채운 사람들은 대개 젊었다. 그들의 활기찬 모습이 보기 좋았다. 돌이켜보면 MWTV를 처음 시작한 그들도 젊고, 열정으로 뜨거웠다. 가장 빛나는 순간을 함께했던 이들. 나는 불 꺼진 철공소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그들의 이름을 불러봤다. 세상을 떠난 미누와 미얀마로 돌아간 뚜라, 몽골에 있을 나라 그리고 마붑, 틴툰, 소모뚜! 모두 그립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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