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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처음 접하는 문화권인 데다가 언어까지 낯선 지역의 식당에 가면 살짝 두렵다. 영어로 요리를 설명하는 메뉴판이 따로 있어도, 그 지역 음식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음식 이름만으로 맛을 짐작할 수 없기에, 무엇을 주문해야 할지 도대체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로 낯선 나라의 메뉴판은 해독할 수 없는 상형문자로 쓰여 있는 이집트 석판 같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세상에는 요리의 종류도 많지만 그 요리에 이름을 붙이는 방법 또한 다양하다. 아예 주재료를 음식 이름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닭똥집이라든가 고등어구이 그리고 삼겹살 등이 이에 해당된다. 식당 메뉴판에서 이런 방식으로 이름 붙여진 음식을 발견하면 일단 안심된다. 싱가포르의 한 식당 메뉴판에 개구리 뒷다리라고 쓰인 요리가 있기에, 호기심에 주문했더니 정말 음식 이름 그대로 개구리 뒷다리가 접시에 한가득 담겨 나왔다. 

비유나 문학적 은유를 사용해 음식 이름을 짓는 방법도 있다. 

마의상수( ), 중국 쓰촨성의 요리 이름이다. 마의상수를 직역하면 “개미가 나무를 기어 올라간다”라는 뜻이다. 문자 그대로의 뜻풀이만으로는 어떤 음식인지 도저히 짐작할 수 없다. 마의상수는 고기를 갈아 볶은 다음 당면과 섞어서 만든 잡채와 비슷한 요리인데, 요리의 생김이 나무를 기어오르는 개미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음식 이름도 있다. 샌드위치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영국의 존 몬터규 샌드위치 백작은 하루하루가 지루하다. 직업이 없어도 되는 귀족이니,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할 일에 쫓기지 않는 그에게 카드놀이는 유일한 취미이자 소일거리다. 그는 카드놀이를 하면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원했다. 그를 위해 빵 사이에 고기와 치즈를 넣은 음식이 만들어졌고, 그 음식의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따서 샌드위치가 되었다. 

투르네도 로시니(Tournedos Rossini)라는 음식 이름을 메뉴판에서 발견했다고 하자. 그렇다. 이 로시니는 바로 그 로시니,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음악가 로시니이다. 유명한 미식가였던 로시니는 안심 스테이크 위에 푸아그라를 얹는 요리를 생각해냈고 즐겨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비싼 안심 위에 그보다 더 비싼 푸아그라를 얹은 이 요리는, 이 요리를 즐겨먹던 로시니의 이름을 따서 투르네도 로시니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가장 흔한 브런치 메뉴 중의 하나인 에그 베네딕트도 마찬가지다. 에그 베네딕트라는 요리 이름만으로 수란 위에 홀랜다이즈 소스가 뿌려진 모습을 상상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베네딕트는 찐계란이나 계란 후라이처럼 음식을 만든 방법을 일러주는 기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에그 베네딕트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공통점은 에그 베네딕트는 이 요리를 즐겨먹던 베네딕트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에그 베네딕트는 투르네도 로시니처럼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먹는 사람에 주목하며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우리는 샌드위치를 즐겨먹은 샌드위치 백작은 알지만, 그를 위해 샌드위치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로시니를 위해 투르네도 로시니를 요리한 사람의 기록도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에그 베네딕트를 즐겨먹던 베네딕트의 이름은 메뉴판에 새겨져 있는데, 베네딕트를 위해 에그 베네딕트를 수없이 만들던 그 사람의 흔적은 메뉴판에 없다. 메뉴판은 요리하는 손은 없고 먹는 입만 갖고 있는 특별한 사람만을 기록하고, 정작 요리한 평범한 사람의 흔적은 지워버린다는 점에서 영웅 중심으로 쓰인 역사와 닮은꼴이다. 

식당은 상업공간이니 먹는 사람 즉 고객이 중요해서 그렇다고 치자. 집이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식탁의 미시권력은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먹는 사람에게 있다. 음식을 먹기만 하는 사람은 음식에 대해 말이 많다. 요리를 한 사람은 음식이 차려진 식탁에서 먹기만 하는 사람처럼 비평가의 태도를 쉽게 취하지 않는다. 집 안의 평론가는 집 밖에서도 평론가이다. 먹고 품평하는 입만 갖고 있는 미식가와의 식사는 그래서 괴롭다. 비빔국수도 만들어 본 적 없는 사람의 평양냉면에 대한 장광설, 즉 면스플레인은 공허하다. 먹기만 한 사람은 만드는 사람의 거룩한 손을 잘 모른다.  

나는 처음 만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할 때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 즐겨 만드는 음식을 묻는다. 나 혼자만의 사람 감별법이다. 남이 해준 음식을 먹으며 해박한 지식을 들먹이며 평론을 곁들여 세끼를 먹는다는 그 ‘삼식이’는 매력적이지 않다. 우리는 샌드위치와 로시니 그리고 베네딕트가 살았던 옛날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삼식이’가 손을 되찾는 ‘미래’의 그 어느 날, 거창하게 말하자면 음식의 새역사는 시작될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남이 해준 음식이라지만,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음식은 먹는 입과 만드는 손이 따로 놀지 않는 음식이다. 공정한 음식은 미시권력을 돌파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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