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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삶은 화려하고, 자유분방하고, 모험적이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도시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사람들도 꽤 있다. 도시는 발전과 팽창, 경쟁과 신분상승의 욕망이 응축된 공간이기도 하다. ‘기회의 땅’을 누리려는 열망이 없었더라면, 38억명의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드는 현상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의 얼굴은 이중적이다. 소외와 경쟁, 갈등과 삭막함은 도시적인 삶의 또 다른 모습이다. 모든 도시에는 전통과 현대, 역사와 미래, 절망과 희망이 공존한다. 초고층 빌딩과 슬럼가를 구분 짓는 것은 신시가와 구시가의 시각화된 차이만은 아니다. 그곳에는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낸 도시화의 그늘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도시에서 밀려난 패자들의 목록이 있다면, 맨 앞자리에 놓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자연이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숲이 가득한 도시에서 자연의 원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도시는 미국의 언론인 빌 매키벤이 <자연의 종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이 자연과의 오랜 대립 속에서 자신의 승리를 선언한 공간”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도시가 주목을 받는 것은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그곳에서 살아가는 ‘도시 인간(Homo Urbanus)’의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역할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지구를 ‘도시 행성’으로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도시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도시는 전 세계 에너지의 75%를 쓰며 이산화탄소의 80%가량을 내뿜는다. 더군다나 도시는 식량과 에너지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외부와의 연결이 끊기는 순간, 하루도 버티기 힘든 곳이 바로 도시다.

이렇듯 냉정한 현실 앞에서 세계의 도시들은 ‘지속가능한 도시’로의 탈바꿈을 서두르고 있다. 최고의 녹색도시를 꿈꾸고 있는 밴쿠버, 2층 굴절버스의 천국으로 불리는 쿠리치바, 전기자동차 수도를 꿈꾸는 샌프란시스코, 난방에너지의 대부분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뮌헨과 오슬로, 2020년까지 탄소중립도시 실현을 선언한 코펜하겐 등이 본보기다. 이들 도시에는 공통점이 있다. 도시가 바뀌면 국가가 바뀌고, 결국은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우리나라에도 같은 꿈을 꾸는 도시들이 많다. 대표 주자는 단연 서울이다. 서울과 인근 지역을 오가는 버스에는 ‘에너지를 아껴 쓰는 당신이 원전 하나 줄이는 발전소’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서울시가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원전 하나 줄이기’의 가치관이 담긴 슬로건이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무심코 이 글귀를 발견했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당신도 발전소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당당한 선언에서, 에너지 시민주권시대의 개막을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원전 하나 줄이기2' 주요과제 (출처 : 경향DB)


‘원전 하나 줄이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전력자립률은 3% 수준에 불과했다. 지금은 5%대를 향해 가고 있다. 작년 전국 평균 에너지소비량이 증가한 것과 달리 서울에서는 전력, 도시가스, 석유 소비가 모두 줄어들었다. 시민들이 ‘생산’과 ‘절약’이라는 두 바퀴 수레를 끈질기게 밀어 올려 거둔 성과다. 하지만 아직은 첫발을 뗀 것에 불과하다. 시행착오도 있었고 앞으로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큼 얼마 전 서울시가 ‘원전 하나 줄이기’의 후속편으로 ‘에너지 살림도시 서울’을 들고 나온 것은 도시혁신의 새 역사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에너지 분야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에너지 나눔 공동체를 실현하겠다는 구상은 에너지야말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기본 조건이라는 명제와 닿아있다. 서울의 ‘에너지 살림도시’ 실험은 도시화의 그늘을 걷어내기 위해 이제 막 시작된 꿈이다. 옥상과 아파트 베란다마다 햇빛나무가 자라고 시민 모두가 발전소의 주인이 되는 꿈을 다른 도시들도 함께 꾸었으면 한다.


안병옥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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