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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제 한빛·고리 원전을 상대로 한 보안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원전 관제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 한수원 직원 19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폐기물 처리업체는 이를 이용해 원전 내부를 자기 맘대로 휘젓고 다녔다. 원전 전산시스템은 접속기록 보관기간이 3일에 불과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추적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국가 보안시설인 원전의 전산관리 실태가 고작 이 정도라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관제시스템은 원전 가동을 통제하고 기밀정보를 보관하는 핵심 설비다. 기밀사항이 담긴 만큼 아무나 접속할 수 없도록 이중 삼중의 보안장치가 필요한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직원들의 보안의식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내부 전산망에 접속할 수 있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협력사에 건넨 것은 지폐가 보관된 한국은행 금고 열쇠를 맡긴 것이나 다름없다. 협력업체 직원들은 이를 갖고 작업허가서를 자체 작성하고 방사성 폐기물 반출 승인도 스스로 했다고 한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겼으니 방사성 폐기물 처리도 제대로 이뤄졌을지 의문이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29일 노후원전 폐쇄를 주장하며 세종대로에서 청계천까지 거리 행진을 벌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원전 보안에 구멍이 뚫린 것도 문제지만 정부 대응은 더 한심하다.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한 인터넷언론의 문제 제기가 있고 나서야 늑장감사에 착수했다. 더구나 허술한 보안관리 실태를 확인하고도 실태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관제시스템에 보관된 원전 기밀이 유출됐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또 유출된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만에 하나 외부 불순세력의 손에 들어갔을 경우 그 파장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정부는 “우리는 해결 능력이 없기 때문에 외부 전문기관에 맡겨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원전 보안을 책임진 정부가 전문가 타령만 하고 있으니 도대체 뭘 믿으라는 건가.

원전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툭하면 멈춰서는 잦은 고장 탓에 사고뭉치라는 오명에 시달리고 있는 터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검찰이 즉각 진상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관제시스템에 보관된 기밀사항 유출이나 아이디·비밀번호의 외부 반출 여부를 철저히 가려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 이번 점검 대상에서 빠진 나머지 원전도 예외일 수 없다. 산업부 공무원들의 무능이 확인됐으니 보안점검 체계의 개편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자리만 차고 앉아 “우리 역량 밖”이라고 하는 정부는 더 이상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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