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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한 육류 소시지 업체가 비건(vegan, 완전채식) 소시지를 몇 년 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판매를 시작했을 때 업체는, 5년 안에 비건 소시지가 기존의 육류 소시지와 판매량이 비슷해질 거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비건 소시지는 단 1년 만에 육류 소시지의 판매량을 넘어섰습니다.”

도서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를 통해 제도적으로 강요된 육식의 메커니즘을 분석한 사회심리학자 멜라니 조이 박사의 말이다. 한국을 찾아 강연 중인 조이 박사는 최근 유럽과 북미에서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비거니즘(Veganism, 완전채식) 열풍의 현황을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또 하나의 놀라운 수치. 2010년 독일에서 새로 출간된 비건 요리책은 3권이었는데 2011년에는 12권, 2012년에는 23권, 2013년에는 48권, 2014년에는 77권이 나왔다. 북미도 마찬가지다. 10년 전 미국에서 “저는 비건이에요”라고 말하면 괴물쯤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이 지금은 “와, 멋지군요. 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젊어 보이는군요”라고 답한다는 것이다. 지난 2월 베를린영화제 개막식에서 1000명 넘는 게스트들에게 제공된 식사가 비건식이어서 놀랐는데, 그것이 내게는 특별한 체험이었어도 그들에게는 일상이었던 것이다. 육식의 본고장이었던 나라들의 식탁에서, 아니 음식에 관한 의식에서,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대한민국은 어떨까. 닭고기로 소비되는 육계가 1년에 7억마리 이상 도축된다. 돼지고기 생산량은 지난 40년간 10배 이상 증가했다. 급식도 고기, 회식도 고기, 아침엔 햄 샌드위치, 점심엔 돈가스, 저녁엔 삼겹살. TV만 틀면 ‘먹방’, 지하철에도 육류 광고. 그런데 전통적으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던 한국인들이 이렇게 고기를 많이 먹게 된 것은 사실 오래되지 않았다. 최근 20~30년 사이 급격히 육류 소비가 늘었다. 한국인이 갑자기 고기를 많이 먹게 된 배경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가축을 대규모 밀집 사육하는 이른바 ‘공장식 축산’이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정부는 ‘대규모화’와 ‘계열화’를 추진함으로써 공장식 축산을 지원했다. 농림수산부(현 농림축산식품부)는 대량 사육 농가에 자동화 설비를 위한 예산을 지원했다. 대량으로 키워야만 예산을 지원했기 때문에, 소규모로 가축을 키우던 농가들은 대규모 사육을 할 것인지 아니면 사육을 포기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이로 인해 농장은 공장이 되고, 농가는 기업화되었으며 가축은 ‘식용동물’로 전락했다. 육류의 대량생산, 대량소비와 비례해서 고혈압, 심장병, 뇌졸중, 당뇨, 암 발생도 급증했다. 대규모 밀집사육과 밀폐된 축사는 바이러스의 온상이 되어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가 거의 매해 발생하게 됐고, 그때마다 살처분을 한다. 2011년부터 2014년 사이 무려 1조8418억원의 살처분 보상금이 국민의 혈세로 지출됐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매몰지 주변의 상수도를 정비하는 데 투입된 예산도 6411억원에 달한다. 가혹한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동물들은 각종 질병에 걸린다.

치맥과 삼겹살을 주문하기 전에 잠깐 생각해보자. 육류를 향한 끝없는 이 욕망이 과연 애초에 우리의 것이었는지, 어쩌면 우리는 육식을 강요하는 시스템에 포획되어 있는 건 아닌지. 당장 모두가 채식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공장식 축산과 과도한 육식만은 시급히 제동을 걸어야 한다. 녹색당,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에서 ‘공장 대신 농장을’ 캠페인을 전개하며 1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가장 심각한 동물학대로 손꼽혀 유럽연합 28개국에서 법으로 금지된 암퇘지 스톨(감금틀)과 산란계 배터리케이지부터 없애자는 서명이다. ‘남의 살’ 무한리필, 이쯤에서 멈추자. 육식주의 매트릭스에서 이제 그만 뛰쳐나오자.


황윤 | 다큐멘터리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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