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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야당을 이끌었던 어떤 의원은 2012년 박근혜 후보를 도운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탐욕이 없을 것이다. 둘째, 주변이나 가족관계가 간단할 것이다. 셋째, 누구한테 신세를 진 적이 없어서 방향만 제대로 설정하면 제대로 갈 것이다.

당시에 꽤 많은 사람이 그의 생각에 동의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단순한 접근이 지금 이 사태를 낳은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분석에는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자질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이 자질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인데, 그는 후보가 그러한 신념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사실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후보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검증하는 일은 없었다. 선거 규칙을 지키기만 하면 후보는 자동적으로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권 때 민주주의가 유린되는 것을 지켜보았으면서도 후보자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검증은 거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민주주의 타령은 그만하고 경제에 집중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그래도 민주라는 말을 버리기 어려웠던지 ‘경제민주화’가 여야 할 것 없이 후보들 사이의 유행어가 되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3일 (출처: 경향신문DB)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바로 폐기되었다. 박근혜 후보를 도운 야당 의원은 이제 와서야 비선 실세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근본 원인은 대통령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모른다는 것은 후보자 시절에 확연하게 드러났다. 민주주의자라면 박정희 정권의 민주주의 유린을 조금이라도 인정했을 것인데, 그는 한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오히려 박정희 정권의 사법살인에 대한 사과 발언을 사실상 철회함으로써, 민주주의자가 아님을 확연하게 드러냈을 뿐이다.

그래도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많은 사람이 박정희 시절의 ‘민주주의보다 경제 먼저’를 소중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어도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꽤 많을 것 같다.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을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탐욕스러운 비선 실세와 ‘내통’했기 때문이라는 것에서 찾는 분위기가 이를 보여준다.

대통령의 자질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보다 통치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둘은 따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모르면 통치능력도 없다. 반대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깊으면 통치능력의 수준도 높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는 다방면의 공부와 성찰을 통해야 얻어지는 것이다. 공부와 성찰 없이 통치능력이 얻어질 리는 만무하다. 그러므로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모르기 때문이다.

4년 전 대통령 선거 때 야권은 민주주의보다 경제에 집중했다. 그들의 민주주의 인식 수준도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사람들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 한탄하지만, 나는 어떤 면에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민주주의를 모르는 사람, 민주주의자가 아닌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고, 박정희 방식으로 민주주의보다 경제 구호에 매달리는 것의 결말이 어떤 것인지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보다 공들여서 검증해야 할 것은 후보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대통령 치하에서 다시 5년을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기 때문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 전에 이 칼럼에 썼던 말이다. 그런데 그 치하에서 살게 된 지 4년이 되었다. 그가 물러나면 혼란이 올지 모른다고 하지만, 나는 지금 당장 그 치하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자 대통령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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