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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5년 뉴턴이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영국 런던에는 페스트가 돌았다. 병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은 휴교에 들어갔고, 뉴턴은 고향 울스소프로 돌아갔다. 고향에서 뉴턴은 거의 자가격리 상태에서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휴교는 2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뉴턴은 이때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중력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켰고, 프리즘을 가지고 빛이 무지개색으로 나뉘는 것을 관찰하며 빛에 관한 이론을 만들어냈다. 그의 가장 중요한 발견들이 이 기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뉴턴이 살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메르스 유행 사태로 상당수 학교가 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경기장이나 극장, 시장도 한산해졌다. 학교에 못 가는 학생들은 놀이터에도 나가지 못하고 아마 집안에서 빈둥거릴 것이고, 직장 다니는 부모들은 이 아이들 건사하는 일로 골치가 꽤 아플 것이다. 매출이 떨어진 상점들은 갈수록 시름이 깊어갈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로 경제가 침체된다고 안절부절, 그렇다고 해서 유행병을 막지도 못하며 우왕좌왕이다.

메르스 유행 사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위험으로 가득 차 있는지, 이 위험이 얼마나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는지 잘 드러내준다. 그리고 위험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사람들이 어떤 심리상태가 될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 가득한 위험들은 제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관리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근대 이전에 사람들은 이런 위험을 거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았다. 대 역병이 돌아도 원인을 몰랐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종종 희생양을 찾아서 분풀이를 하는 것이 최대의 대응이었다.

지금은 이전과 달리 위험의 원인을 아는 시대가 되었다. 알기 때문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더 큰 위험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다. 유행병의 원인도 알 뿐만 아니라 제철공장, 화학공장, 원자력발전소 같은 곳에서 발생하는 대형사고의 원인도 알고 있고, 그렇기에 이미 대처방안도 마련해놓고 있다. 대처방안이 있으니 안심하며 살아가고 더 많은 위험의 발생원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이런 대처방안들의 특징은 모두 외적인 수단에만 의존할 뿐 사람들의 내면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위험을 대하는 개개인의 자세와 태도, 사회의 성숙한 대처는 괄호 속에 들어가 있다. 그렇기에 대처방안이 잘 먹혀들지 않으면 당황하게 되고, 혼란과 공포가 더 심해진다.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 휴업 중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11일 어린이가 뛰어놀고 있다. (출처 : 경향DB)


메르스 유행 사태는 우리 사회에서 위험 대처방안이 작동하지 않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드러내보였다. 메르스는 대 유행병은 아니다. 그러므로 정부 당국은 처음 메르스가 발생했을 때 매뉴얼에 나와있는 범위 안에서 대처했다. 그러나 병은 매뉴얼의 예상을 어기고 여기저기로 퍼져갔다. 정부는 당황해서 우왕좌왕하고, 시민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공포는 ‘유언비어’를 낳았고, 정부의 당황과 우왕좌왕은 더 심해졌다. 뒤늦게 강력한 대처방안을 도입해 병과 싸우고 있지만, 한번 엄습한 공포는 쉬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한국은 다른 현대국가처럼, 아니 이들보다 더 위험으로 가득찬 사회다. 이 위험은 빈틈이 있으면 사회 전체를 휩쓸어버린다. 위험의 관리는 사회유지에 필수적이다. 테크노크라트, 관료, 통치전문가들은 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이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위험에 대한 준비는 외적인 대처수단만으론 안된다. 내적인 태도도 중요하고, 위험 발생원을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현대사회의 최대 위험 원천인 원자력발전소를 확대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경제에만 관심을 집중한 결과이다. 그러나 위험이 현실이 되면 경제는 끝장난다.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지 않으면 경제는 침체한다. 그러나 뉴턴은 빈둥거리는 동안 최대의 창조성을 발휘했다.


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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