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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대응의 핵심은 초동조치지만 정부는 세월호 침몰에 이어 또다시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국가재난발생 시 가장 중요한 것이 신속히 컨트롤타워를 구성해 분야별 임무를 분산하고 종합적인 대응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생명을 구하는 것은 분초를 다투는 일이기 때문에 때로는 전시 상황처럼 일사불란하게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행정 과잉이 있어도 필요하면 해야 할 일이다.

‘재난 및 안전기본법 제3조’에는 감염병을 사회 재난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메르스 사태 초기에 신속하게 국가재난대응체계가 가동됐어야 했다. 국가에서 법으로 정한 재난대응체계는 국민안전처가 중심이다. 그러나 중앙재난안전대책 본부는 위기관리 ‘심각’ 단계가 될 경우에 가동된다는 이유로 국민안전처는 정부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겨우 내놓은 대책은 ‘범정부 메르스 대책 지원본부’ 구성이다. 이는 복지부가 주관하는 ‘중앙 메르스 관리대책본부’를 지원하는 것으로 당연히 해야 할 컨트롤타워 기능을 포기한 것이다. 실제 지원본부의 구성과 기능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서 정한 ‘중앙재난 안전대책 본부’와 같아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법에서 정한 공식 국가재난 대응체계를 구성하지 않고 다른 이름의 지원본부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국민안전처의 역할이 무색하다.

더구나 국민안전처는 재난사태에 대한 정부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권한과 예산도 커지고 늘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에서는 존재감이 없었다. ‘중앙재난 안전대책 본부’를 가동하지 않아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메르스 환자발생 17일 만에야 ‘예방수칙’이라는 긴급 재난문자를 발송해 전형적 뒷북행정이라는 비난을 받고 스타일만 구겼다.

메르스 사태의 관리 주관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중앙사고수습본부’ 구성은 재난이 발생한 경우뿐 아니라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도 구성해야 한다고 법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구성도 늦었고 오히려 교육부가 휴교령을 내리자, 의학적 근거가 없다며 맞서기까지 했다. 국무총리(대행) 역시 사태 발생 한참 뒤에야 국민안전처 장관을 본부장으로 격상한 강화 대책을 내놓았고, 지난 7일에야 국민의 정보공개 여론에 밀려 병원명단을 발표했다. 민간 전문가에게 전권을 맡기는 것도 정부 스스로의 무능을 인정한 꼴이다.

이성호 국민안전처 차관이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메르스 특위 전체회의에서 보고에 앞서 안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의 역할은 두말할 것도 없다. 대통령은 보다 일찍 전면에 나서 관련 부처들을 다잡고 사태 수습을 독려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줬어야 했다. 한마디로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보여준 정부의 총체적인 무능과 무력한 모습은 우리 정부의 위기관리가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보여줬다.

위기관리는 말로만 해결되는 사항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과 통합 방위법의 내용도 국가위기관리 시 안보적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세부적인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만종 | 한국테러학회 회장·호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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